쌍용자동차 한 해고노동자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쌍용자동차 한 해고노동자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 기억하고 계시죠?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조항을 확대해석해 집단해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
▷ 관련기사 : 25명 보내며 5년 버틴 ‘복직 꿈’ 대법서 무너지다,
야금야금…노동자 옥죄는 대법원 판례의 ‘진화’) 이런 와중에 2013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정리해고 제도개선 권고안’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 다운받기 : 인권위 정리해고 제도개선 결정문) 인권위는 당시 결정문에서 모호한 정리해고 요건을 명확히 해서 남용을 막으라는 취지의 권고를 했습니다.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이유로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등급심사에서 강등 위기를 맞고 있는 ‘현병철의 인권위’의 권고여서 더욱 놀랍습니다. 대법원은 ‘현병철 인권위’보다 못하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어 보입니다.
인권위는 ‘정리해고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며 상황 인식부터 대법원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인권위는 “1998년 2월 근로기준법 상 정리해고의 요건이 완화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됐다. 이후 비용절감을 위한 정리해고, 기술혁신·자동화에 따른 잉여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면서 청년실업과 조기정년 등의 문제가 대두됐다”며 “해외자본들이 국내기업을 인수하면서 경영상황과 관계없이 상시적으로 인적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상황도 벌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문제인식에 따라 인권위는 국회의장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세가지를 고치라고 권고했습니다.
1. “근로기준법 제24조 1항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라”
인권위는 ‘경영상의 필요’에 대해 대법원이 유연한 해석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번 대법원의 쌍용차 판결에 대한 세간의 비판과 같은 맥락입니다. 인권위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요건에 대해 대법원이 점차 유연한 해석을 하고 있다. 초기에는 문언에 맞게 ‘해고를 하지 않으면 기업 경영이 위태로울 정도의 급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라고 봤지만 이후 ‘인원 삭감이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견해로 바뀌었다. 대법원은 더 나아가 장래에 올 수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인원 삭감도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엔 정리해고에 포함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권위는 이 때문에 ‘긴박한 경영상 필요’라는 정의를 구체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인권위는 “‘경영 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 외에는 경영상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요건을 명문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오영중 인권위원장(오른쪽)과 인권위 소속 김종우 변호사가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쌍용차 정리해고가 정당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외면한 판결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2014.11.17 (서울=연합뉴스)
2. “근로기준법 제24조 2항의 ‘사용자의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구체화하라”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해직자 54명은 2001년 10월 회사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자신들을 정리해고하자 “회사가 해고를 막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대법원은 2006년 9월 회사 손을 들어주면서 “해고회피노력의 방법과 정도는 확정적·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경영위기의 정도, 정리해고를 실시하여야 하는 경영상의 이유, 사업의 내용과 규모, 직급별 인원상황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인권위는 이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제24조2항이 개선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인권위는 “대법원 판단대로 해고회피노력은 기업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사용자가 일반적으로 고려해야 할 해고회피노력의 내용을 열거하는 방식으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기업 사정별로 다를 수는 있겠지만 가능한 일반원칙을 법에 규정하는 게 옳다는 뜻입니다.
3. “근로기준법 제25조 1항의 ‘같은 업무’를 ‘관련이 있는 업무’로 넓혀라”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우선 재고용’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회사가 정리해고된 노동자가 하던 일을 위해 사람을 뽑아야할 때 새로 뽑지 말고, 정리해고자를 우선 채용하라는 취지입니다. “사용자는 근로자를 정리해고한 날부터 3년 이내에 해고된 근로자가 해고 당시 담당하였던 업무와 같은 업무를 할 근로자를 채용하려고 할 경우 정리해고된 근로자가 원하면 그 근로자를 우선적으로 고용하여야 한다”는 제25조1항이 해당 조항입니다.
문제는 ‘같은 업무’를 할 근로자를 채용할 때만 우선채용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인권위는 ‘같은 업무’가 아닌 ‘관련이 있는 업무’에도 우선 취업할 수 있도록 우선 재취업 규정을 넓히라고 권고했습니다.
인권위는 “해고 당시 담당했던 업무와 ‘같은 업무’로 우선 취업 규정을 제한함으로써 해고 기간 중의 새로운 직업훈련 등을 통한 능력개발 유인을 떨어뜨리고 업무 환경의 지속적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리해고자의 복직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