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13) 학생은 12년 동안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살고 있다. 임군이 4월18일 오후 용인의 한 초등학교에서 산소호흡기를 끌고 하교를 하고 있다. 용인/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국가란 무엇일까? 의외로 ‘국가란 나에게 무엇일까?’라고 묻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팔팔한 나이에 긴 총 어깨에 메고 새벽이슬 맞고 있을 때? 힘들게 일해 받는 월급에서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세금으로 걷어 갈 때? 그때도 ‘국가란 나에게 무엇인가?’란 질문을 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으레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다들 겪는 것이려니 하면서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왔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국가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이따금 던지게 된다. 부부가 휴일도 마다하고 맞벌이하면서 모은 돈으로 전세금 올려주려 하는데 약 올리듯 치솟는 전셋값을 볼 때, 아이 맡길 곳이 없어 회사 눈치 보면서 휴가를 낼 때, 엄청난 사교육비를 내면서도 아이의 미래를 계속 걱정할 때, 부모님이 편찮을 때, 무상으로 보육한다고 하고선 배 째라 할 때.
얼마 전에는 이런 걱정들 가운데 하나로 인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울 때, 거의 갑절로 오른 가격을 보고 뒷목을 잡았다. “야, 국가가 나에게 뭘 해줬다고 여기다가 세금을 왕창 때리냐?”
사진은 롯데마트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한 날 피해자 임성준군을 찾아가 찍은 사진이다.
3년 전 <한겨레21> 데스크로 일할 때 후배 기자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포토스토리로 엮어 취재해보고 싶다고 기획 아이템을 낸 적이 있었다. 정부가 폐 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밝혔지만 그 뒤 일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흐지부지 잊힐 때였다. 책임지는 이 없이 세월만 보내는 사회, 기사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사안이었지만 사진상으로 표현하는 게 문제였다. 얼마 후 후배가 취재해 온 사진을 보면서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이제 초등학생이 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산소통에 연결된 관을 코에 꽂은 채 등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 키만한 산소통은 엄마가 바퀴 달린 카트에 실어서 같이 등하교를 돕고 있었다. 이유는 2살 때 흡입한 가습기 살균제 때문인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임군은 그때부터 산소통에 의지해 생활해왔다고 했다. 그 후 3년이 지났지만 그 아이는 여전히 산소통을 끌면서 학교를 다녔다. 이제는 제법 커서 산소통을 혼자 끌고 다닌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 고통스러운 치료도 계속한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첫 사망자가 나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1년이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으로 인한 사망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한 것은 5년 전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검찰이 수사를 운운하고 기업은 부랴부랴 보상 계획을 발표하고, 정치권은 특별법을 만든다며 호들갑이다. 그동안 가족들은 피해 보상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길거리로 나섰지만 국가는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달래주는 국가를 바라는 게 그렇게 사치스러운 건가? 적어도 그들에겐 그랬다.
하긴, 금쪽같은 자식을 수학여행길에 잃은 부모들이 길바닥에 나앉아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벽으로 둘러치고 물대포도 쐈으며 조롱하고 모욕했다. 아픈 가슴 추스르기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고 ‘자식 잃은 게 벼슬이냐?’며 삿대질하던 정신 나간 노인네들을 일당 주고 동원했다는 대목에선 배신감이 밀려왔다.
긴 총 메고 보초 섰던, 세금 꼬박꼬박 걷어가던 그 국가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에게 국가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 한 영화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 울컥했다는 그분에게만 있는 건 아닌가? 골치 아프다. 담배나 태우자. ‘으…담뱃값….’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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