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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양승태 ‘위험한 거래’…상고법원 청 협조 얻으려 사법독립 팽개쳐

등록 2018-05-28 05:01수정 2018-05-31 17:14

사법행정권 남용 특조단 보고서

‘박근혜 입맛’ 판결 사례 모음
상고법원 도입 BH 설득방안 등
박근혜 독대 앞서 문건 집중생산
대통령 설득 시나리오 만든 셈

독대 뒤 청, 상고법원 협조않자
‘재판 지렛대 청 압박’ 의견 문건
임종헌 당시 차장 ‘독대용’ 부인
2016년 1월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 박근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6년 1월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 박근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재벌 총수들이 미르재단 출연을 요구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를 이어가던 2015년 7월 말, 양승태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도 바쁘게 움직였다.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로 ‘현안 관련 말씀자료’(7월27일),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 설득방안’(7월28일),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7월31일) 문건이 집중적으로 작성됐다.

특히 양 대법원장 보고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현안 관련 말씀자료’(대외비)에는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왔다”는 낯뜨거운 표현과 함께 박근혜 정부 첫해부터 2년여에 걸쳐 내려진 대법원과 지방법원 판결 14건(이명박 정부 시절 2건 제외)이 인용됐다. 법원이 이 판결을 통해 박 대통령이 추진하던 “과거사 정립, 자유민주주의 수호, 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 대통령 추진 4대 부문 개혁을 강력 지원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문건 작성 일주일여 뒤인 8월6일, 양 대법원장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났다. 신임 대법관 임명제청을 위한 만남이었지만, 양 대법원장이 청와대에 들고 간 ‘현안’은 자신의 최대 관심사였던 ‘상고법원 도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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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의 최종 조사보고서를 보면, 양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의 상고법원 설치 협조를 받기 위해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스스로 내팽개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말씀자료’와 ‘BH 설득방안’ 문건에는 대통령 긴급조치 사건 관련 대법원 판결(2건)을 제시하며 “청와대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 협력 사례”로 등장한다. 2014년 10월과 2015년 3월 대법원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긴급조치 관련 판결을 통해 “당시엔 유효한 법규”,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는 이유로 국가배상 등을 제한하는 판결을 했다.

노동 관련 사건에선 박 대통령의 ‘노동 등 4대 부문 개혁’을 거론하며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판결을 통해 구현했다고 밝혔다. 회사 쪽 손을 들어준 대법원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 판결 등이 인용됐다.

앞서 2015년 4월에 임 전 차장 지시로 작성된 ‘성완종 리스트 대응 방향 검토’ 문건에도 관련 사건들의 재판 방향과 영장 발부에 대법원이 개입한 정황이 나온다. “리스트 사건 관련해 기소 전까지는 적정한 영장발부 외에는 다른 협력 방안이 없다”거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 사법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사안의 처리 방향과 시기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2015년 3월 작성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 문건을 보면,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도입에 부정적인 우병우 민정수석을 “직접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대신 박 대통령을 직접 공략하는 전략을 더욱 강화해 청와대 관심 재판 등을 ‘톱다운’ 방식으로 꼼꼼하게 챙긴 것으로 보인다. 양 대법원장이 박 대통령을 독대하는 자리를 앞두고 ‘현안 관련 말씀자료’ 등을 만든 것도 이런 ‘대통령 설득 시나리오’ 차원이었던 셈이다.

법원행정처는 독대 이후에도 상고법원 설치에 진전이 없자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11월19일)이란 문건을 통해 재판을 지렛대 삼은 “청와대 압박 카드”까지 제시했다.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통해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지만, (청와대가) 비협조로 나오는 이상 “청와대 국정운영 기조를 고려하지 않는 독립적·독자적 사법권 행사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임 전 차장은 특조단 조사에서 “관련 문건들이 2015년 8월 대법원장과 대통령 회동 말씀자료로 준비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임 전 차장은 “(법원에 대한) 청와대의 부정적 고정관념을 불식하기 위해 국정운영에 도움이 됐다고 인식될 수 있는 판결들을 선별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사후적으로 ‘대통령 입맛’에 맞을 법한 판결들을 모았을 뿐 재판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특조단은 임 전 차장의 해명을 수용했고, 당시 박병대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서면조사만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조사하지 않았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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