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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법정구속된 피고인들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전화 한 통만”

등록 2018-07-24 05:00수정 2018-07-24 16:14

기자, 교도관이 되다
구치소에서 보낸 일주일②

천당과 지옥 갈리는 법정구속의 현장
법정은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아무런 대비 없이 재판 받으러 왔다가 구속되는 사람이 있고 큰 기대 안 했는데 집행유예 등으로 석방되는 사람이 있다. 법정 뒤 편의 구치감 안에선 희비가 교차한다. 언론의 눈길이 닿지 않던 곳이다. 서울동부구치소 교도관이 돼 그 살풍경을 취재했다.

“법정구속입니다~.”

6월22일 오전, 서울북부지법 구치감. 한 40대 사내를 구치감으로 계호(戒護, 경계와 보호)하며 교도관이 말했다. 사내는 작은 키에 말랐고 구릿빛 피부에 안경을 썼다. 청바지와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다. 충혈된 눈에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전화 한 통화만 하면 안 될까요?” 남자가 애걸했다. “안 됩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교도관은 단호했다. “밖에서는 구속된 거 모르는데 전화 한 통화만 하게 해주세요. 네?” “구속사실 통지서 쓰시면 통보가 될 겁니다.” 교도관은 가슴부터 다리, 양말, 운동화 밑 깔창까지 사내의 몸을 검신했다. 신속하고도 숙련된 노동이었다. “형집행법(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담배와 라이터는 폐기합니다.” “전화 한 통화 좀 안 될까요?” “안 된다니까요. 본인은 이제 민간인이 아니에요. 수용자예요, 수용자.” 남자가 나를 보며 눈빛으로 애원했다. 시선을 피했다. 남자는 포기하고 수갑 찬 손으로 구속사실 통지서를 작성했다. 수신자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동거인이었다. 술에 취해 술집 종업원에게 욕을 하고 그릇을 던지는 등 난동을 부린 죄로 그는 법정구속이 됐다. 재판을 기다리는 다른 수용자들과 함께 구치감에 입감됐다.

“북부는 가난한 이들이 많은 지역 특성상 법정구속도 많아요. 대부분 절도, 업무방해, 재물손괴 등이고 직업은 무직이거나 건설 일용노동자, 노가다죠. 재판에 아예 안 나와서 구속되는 경우도 많아요. 법에 무지하기도 하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니까 못 오는 거죠.” 이날 내 파트너가 된 교도관이 말했다.

6월22일 오전 오승훈 기자(맨 오른쪽)가 서울북부지법으로 재판을 받으러 온 수용자들을 계호하고 있다. 서울동부구치소 제공
6월22일 오전 오승훈 기자(맨 오른쪽)가 서울북부지법으로 재판을 받으러 온 수용자들을 계호하고 있다. 서울동부구치소 제공

남녀 구치감이 분리돼 있었고 양쪽에 법정으로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수용자는 그 문으로 나가고, 법정구속된 피고인은 그 문을 통해 들어왔다.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문이었다. 그 문에 교도관이 동행했다.

또 다른 50대 남성이 법정구속돼 구치감으로 들어왔다. 면바지에 빛바랜 베이지색 남방을 입고 있었다. 동그란 얼굴이 검었다. 억울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전화 한 통화 좀 합시다. 그것도 안 되오?” “안 됩니다.” 교도관은 구속통지서를 내밀었다. “전화번호를 몰라요. 휴대폰 좀 볼게요.” 남자가 번호를 찾는 동안 교도관은 전화를 거는 건 아닌지 지켜봤다. 구속통지서를 작성하는 남성의 몸을 교도관은 같은 방식으로 검신했다. 맨손으로 남의 양말과 신발 속까지 뒤지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술 먹고 술값 안 내고 행패 부린 죄로 자유를 구속당한 그는 동생에게 통지서를 썼다. 철창 너머 수용자들이 이 광경을 익숙한 듯 지켜봤다.

60대 남성도 있었다. 양복바지에 와이셔츠를 입었다. 은발 머리에 하얀 살집의 피부. 한눈에 봐도 곱게 나이 든 얼굴이었다. 그는 주차된 쏘렌토 차량 트렁크에서 골프채를 훔쳤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딸 앞으로 통지서를 썼다. 이 은발 신사를 포함해 이날 오전 법정에서만 7명이 법정구속됐다. 강력범은 없었다. 강력범은 대부분 수사 단계에서 구속된다.

오전 출정(재판과 조사를 받으러 가는 수용자를 호송하는 일)이 마무리된 시각은 11시40분이었다. 귀소할 시간이었다. 교도관들이 수용자들을 검신한 뒤 수갑 채우고 흰색 포승줄로 묶었다. 포승줄에서 먼지가 날려 구치감을 메웠다. 포승줄을 맬 때, 수용자들은 수갑 찬 손을 위로 올려 허리춤에 줄이 묶이도록 거들었다. 포박하는 교도관이나 당하는 수용자나 무표정했다. 한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두 당면한 일을 당면하고 있었다. “포승줄 묶는 법이 경찰, 헌병, 검찰 다 다르거든요. 근데 우리 교정이 젤 쫀쫀하게 잘 묶어요.” 파트너가 말했다. 수용자 뒤춤에서 포승줄이 고리에 고리를 이으며 늘어졌다. 몇몇은 벨트식으로 돼 있는 신형 포승줄에 결박됐다. 구형보다 인권친화적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신형 포승줄이 보기에 더 낫죠. 근데 예산이 없어서 구형과 같이 쓰고 있어요.” 출정과장의 말이었다. 하늘색 수의에 파란 패찰을 단 스포츠머리의 수용자가 포승줄에 묶인 채 파란 패찰을 단 20대 여성과 눈짓 손짓을 주고받았다. 여성은 수줍은 듯 웃기만 했다. 파란 패찰은 마약 사범을 의미한다. 둘은 공범이었다. 운명의 길 앞에서 그녀는 해맑았다. 한 소년수는 내게 물을 달라고 했다. 종이컵에 물을 담아 먹였다. 포승줄에 묶인 소년수가 무릎을 꿇어 받아먹었다.

건물 오른쪽으로 신입실이 보인다. 새로 구치소에 들어오는 이들이 이곳에서 입소절차를 밟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곳을 거쳤다. 오승훈 기자
건물 오른쪽으로 신입실이 보인다. 새로 구치소에 들어오는 이들이 이곳에서 입소절차를 밟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곳을 거쳤다. 오승훈 기자
교도관들이 묶인 수용자를 3명씩 포승줄로 연결했다. 이른바 ‘굴비두름’이라고 불리는 ‘연승’이었다. 사피엔스가 어류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종의 변화였다. “고령이나 임산부 등 도주의 우려가 없는 수용자들은 포승을 하지 않는다”고 출정과장은 말했다. 실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수용자들 몇은 포승줄에 묶이지 않았다. 승강기 앞에서 층수별 인원을 체크해 무리 지어 내려갔다. 승강기는 쇠창살문으로 양분돼 있다. 보기에 따라서 서로가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드는 구조다. 수용자들을 인솔해 법정에서 1층 수용자 대기장소까지 이어진 50여 미터의 지하 통로로 이동했다. 파트너는 “판사와 검사, 수용자와 교도관이 모두 법정 갈 때 이 길을 이용한다”고 했다. 법복 입은 판사가 서류 들고 앞질러 갔다. 거기서는 가둔 자와 갇힌 자의 길이 다르지 않았다.

교도관들이 인원 점검을 한 뒤 수용자들을 호송버스에 나눠 태웠다. 버스는 동부구치소로 향했다. 오후 검찰 조사에 나가는 수용자들을 다시 태우고 북부지검으로 돌아오려면 밥 먹을 시간조차 빠듯하다. 목요일, 금요일은 재판과 검찰 조사가 많아 출정과가 가장 바쁜 날이다. 12시30분에 구치소에 도착했다. 이미 밥을 먹은 교도관들이 밥을 못 먹은 교도관들과 교대를 했다. “식사하러 가시죠. 시간 없어서 쓸어 넣어야겠네요.” 파트너가 웃었다.

밥을 목구멍으로 집어넣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침 7시30분부터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물 한 모금도 못 마셨다. 뒤가 무거웠다. 교도관이 되고 나서 생전 없던 변비가 생겼다. 느긋하게 화장실을 갈 시간은 없었다. 곧바로 북부지검으로 돌아가야 한다. 담배를 몇 모금 빨지도 못하고 급하게 호송버스에 올랐다.

호송버스는 앞과 뒤편에 철문이 달려 있다. 마지막에 버스에 탄 선임 교도관이 앞쪽 철문을 잠갔다. 이윽고 뒤편 철문도 잠겼다. 파트너와 양쪽 철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앞뒤로 수용자가 앉아 있었다. 버스 2대가 한 대씩 이중철문을 통과해 다시 북부로 출발했다. 서울 문정동 가든파이브 앞 사거리를 돌 때 한 시민이 버스를 쳐다봤다.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호송차량은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특수선팅이 돼 있거든요.” 통화하는 사람, 길을 걷는 사람. 창문 밖 세상은 평화로웠다. 수용자들은 양쪽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두리번거렸다. 구치소 사동에서는 밖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출정은 이들에게 나들이일까.

1시간을 달려 다시 북부지검에 도착했다. 북부지법과 함께 북부지검도 주변에서 가장 크고 멀끔한 건물이었다. 호송버스가 1대씩 법원 건물 뒤편 하차장에 들어섰다. 먼저 도착한 교도관이 스위치를 눌러 하차장 입구 쇠창살문을 내렸다. 도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호송버스의 문이 열리고 수용자들이 건물 속 대기장소로 들어갔다. 나도 버스 앞쪽 출입문 앞에 서서 수용자들을 계호했다.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도착한 수용자들을 남녀로 분리한 뒤 인원 체크가 이뤄졌다. T자 모양의 1층 대기장소는 미니 사동과 비슷했다. 교도관들이 포승줄과 수갑을 풀어준 뒤 수용자들을 대기장소 수용거실에 수용했다. 검사실에서 연락이 오면 그때 다시 수갑을 채웠다. 교도관의 일은 대개 열고 닫고 보고 걷는 일이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3회에는 교도관 업무의 상징인 수용동 주야간 근무와 징벌방, 금속보호장비 체험기가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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