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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법부 “국민은 이기적”…누리꾼 “‘개돼지’ 발언 점잖은 버전”

등록 2018-08-01 11:21수정 2018-08-01 15:30

양승태 법원행정처 문건 파문
사법부까지 ‘국민 폄하’ 인식
과거 ‘개돼지’ ‘레밍’ 비유 발언 큰 논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위)과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왼쪽 아래), 김학철 전 충북도의원(오른쪽 아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위)과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왼쪽 아래), 김학철 전 충북도의원(오른쪽 아래)

“일반 국민들은 대법관이 높은 보수와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만큼, 그 정도 업무는 과한 것이 아니며, 특히, ‘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들임.”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1항은 모든 국민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3항에서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국민의 마땅한 권리 행사를 한순간에 ‘이기적인 행동’으로 몰아간 이들은 다름 아닌 사법부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에 회의적인 여론을 분석하면서 작성한 문건이 그 증거입니다. (▶관련 기사: 양승태 행정처 눈에 상고법원 무심한 국민은 ‘이기적인 존재’?)

문건은 국민들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한 뒤 ‘대국민 전략’으로 “이기적인 국민들 입장에서 상고법원이 생겼을 경우,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접근”해야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뒤틀린 선민의식과 구시대적인 관존민비(벼슬아치는 우러러보고 일반 백성은 낮추어 봄) 시각이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문건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행정부, 입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국민 폄하를 일삼았다는 점에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건이 공개되자 한 누리꾼은 “‘국민들은 개돼지’의 점잖은 버전”(트위터 이용자 @u_u_0****)이라고 꼬집었는데요. 그간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문제적 발언들을 모아봤습니다.

■ “민중은 개돼지다”

2016년 7월, 나향욱 당시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언론사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다”,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행정고시 36회 출신인 나 전 기획관은 교육부 장관 비서관, 청와대 행정관 등을 거쳐 2016년 3월 2급 공무원인 교육부 정책기획관으로 승진했습니다.

‘엘리트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문제적 발언을 두고 당시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망언의 원인은 ‘공무원 공시제도’”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겪은 일화를 소개하며 “대학 입학 후 고시 공부에 매진해 20대 후반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공무원은, 9급으로 들어와 30년 일한 공무원을 부하로 두고 잘도 부려먹는다”며 “(나 전 기획관이 발언한) 신분제라는 것은 다름 아닌 이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관련 기사: “개·돼지, 신분제 발언엔 고시 공무원 사고방식 있어”)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도 당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런 생각하는 고위층, 기득권자, 자본가...들이 이 사람 말고도 여럿 있을 겁니다. 수천, 수만, 수십만… 박근혜 정부가 이런 사람 정리 못한다에 겁니다”고 비판했습니다.

미국 언론들도 나 전 기획관의 발언을 보도할 정도였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나 전 기획관의 발언에 한국인들이 분노하는 배경을 “한국인들이 소득 불평등 심화, 그리고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 긴장 확대에 얼마나 민감한지가 분노에 반영되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엘에이타임스>는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나 전 기획관의 또 다른 발언을 소개하며 이 발언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마저 “얼굴을 붉힐 정도”였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나 전 기획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잇따르자 교육부는 ‘공무원 최고 수위’ 징계를 요구했고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는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고위공직자로서 품위를 손상했다”며 나 전 기획관의 파면을 의결했습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 징계는 파면, 해임, 강등, 정직, 감봉, 견책 등이며 파면은 가장 강한 징계입니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 전 기획관은 법원에 파면 처분 취소 소송을 냈고, 1심에 이어 올해 2심에서도 “징계수위가 과도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교육부는 복직 길이 열린 나 전 기획관에 대한 재징계에 착수하기로 했는데요. 언론 보도를 보면, 강등으로 징계수위가 낮아졌지만 이에 대해 나 전 기획관은 또다시 이의를 제기했다고 합니다.

■ “국민들은 이상한 집단 행동하는 레밍”

‘개돼지’ 다음은 ‘레밍’입니다. 2017년 7월 최악의 물난리 속에 유럽 연수를 떠난 충북도의원들에 대한 거센 비판이 불고 있었습니다. 유럽 연수 의원 가운데 한 명인 김학철 전 충북도의원은 당시 <한국방송>(KBS)와의 통화에서 외유성 유럽 연수를 비판하는 국민을 두고 “무슨 세월호부터도 그렇고. 국민들이 이상한, 제가 봤을 때는 뭐 레밍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집단 행동하는 설치류 있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레밍은 몸길이 3.5∼3.8㎝, 꼬리 길이 약 1.5㎝ 정도의 쥐과 설치류 동물로, 집단을 이루고 직선으로 이동해 호수나 바다에 줄줄이 빠져 죽는 일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레밍은 ‘집단 자살 나그네쥐’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김 전 의원의 말은 국민이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여론에 선동되어 자신들을 비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관련 기사:‘물난리 속 유럽 연수’ 김학철 도의원 “국민은 설치류” 막말)

논란이 커지자 김 전 의원은 연수에서 돌아온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을 빗대거나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며 머리를 숙였지만 두 달 뒤 도의회 징계(출석정지 30일, 공개사과) 이행의 하나로 공개사과하는 자리에서 주민을 ‘늑대 무리’, 자신은 ‘늑대 우두머리’에 비유해 또 논란을 낳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의원은 “사려 깊지 못한 판단과 언행으로 국민, 도민, 동료 의원에게 걱정을 끼쳐 드린 데 사과한다”면서 “앞으로 이 일을 무겁게 받아들여 늑대 우두머리가 좌·우측 귀를 모두 열어 강한 놈, 약한 놈, 늙은 무리, 새끼 무리를 아우르면서 돌보며 가듯 배려와 포용, 관용의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레밍’ 발언으로 자유한국당에서 제명됐던 김 전 의원은 복당을 신청하지 않았고 6·13 지방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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