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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김명수 대법원장은 묵언수행 중?

등록 2018-09-02 09:29수정 2018-09-02 14:47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사법부가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김 대법원장(오른쪽)이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법관 임명식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나란히 걷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사법부가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김 대법원장(오른쪽)이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법관 임명식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나란히 걷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턱을 막 넘어선 손님 들으라고 일부러 그러는지 그는 혀를 끌끌 찼다. “원장님 심간이 아주 편하신가 보네, 이렇게 활짝 웃고 계시니. 집이 온통 불타고 있는데, 대체 어찌하겠다는 심산인지….” 법원 고위직을 지낸 그 변호사가 탁자 위로 집어 던진 신문 지면에선 김명수 대법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작 있어야 할 곳, 나타나야 할 장면에 ‘원장님’은 부재하다. 검찰 수사를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궁지에 몰려 “필요한 협조를 마다치 않겠다”고 다짐한 지 두 달이 훨씬 지났지만, 그 ‘협조’는 허언에 그치고 있다. 휘하 법원행정처가 주요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고, 그 자료를 확보하겠다고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법원 스스로 ‘셀프 기각’하는 황당한 코미디가 거의 매일 되풀이되고 있는데도 대법원장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 사이 수사 선상에 오른 법관들은 여느 피의자들과 똑같이 휴대전화를 폐기하고 이메일을 삭제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수사는 어떻게든 검찰이 풀어가야 할 몫이라고 쳐도, 김 대법원장 앞에는 절체절명의 난제가 산더미다. ‘양승태 대법원’ 혹은 그 이전부터 첩첩이 쌓인 문제가 사법농단 사건을 계기로 한꺼번에 노출된 형국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 퇴임식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초상화를 지나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 퇴임식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초상화를 지나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이라는 엉뚱한 대안을 억지로 추진하다 사달을 내긴 했지만, 그 배경에는 대법원의 ‘10초 재판’이 있다. 대법관은 13명에 불과한데 너무 많은 사건이 밀려들다 보니 대법관이 아니라 그 아래 재판연구관들이 사실상 판결의 방향을 정하고, 각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 3개 소부에선 개별 사건을 10초 만에 결론 낸다. 그 중 70% 넘는 사건이 심리 없이 기각(심리 불속행)된다. 대법원 전체 사건의 99.9%는 이처럼 소부에서 끝나고,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는 겨우 0.1%만이 올라간다. 이건 국민이 기대하는 3심도, 최고 법원의 재판도 아니다.

사법농단의 ‘본거지’로 드러난 법원행정처는, 애초부터 그럴 위험을 안고 있었다. 인사와 예산, 정책에 감찰까지 법관들을 통제할 모든 권한이 집중된 데다 대법원장 수중에 완벽하게 장악돼 있다. 대법관을 제외한 모든 법관의 인사권도 대법원장 혼자서 행사한다. ‘제왕’인 대법원장이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는 구조다. 법관에게 승진이나 인사이동의 개념이 없고,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미국 대법원에 견주어 보면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사법농단 의혹이 수사로 번지면서 재판에 대한 신뢰도는 끔찍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법정 안팎의 분위기를 체감하는 판사와 변호사들이 “큰일 났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최종 심판자의 역할을 해온 것은 그나마 국민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는 아니다.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는 벌써 몇 해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로 바닥을 찍었다. “지금이 사법부의 최대 위기”라는 문 대통령 발언은 냉정하면서도 정직한 평가다.

이렇게 바꾸고 고치고 내려놓아야 할 과제가 산적한데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다. 지난해 9월26일 취임 이후 사법농단 의혹을 쥐고 앉아 반년 넘게 ‘셀프 조사’할 때도 그는 지금 같은 모습을 보였다. 누가 종합해결세트를 선물해줄 것도 아닌데, 심사숙고를 하는지 우유부단해서인지 알 수 없는 침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위에서 다들 김 대법원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굉장히 궁금해 하죠. 이번 사건도 그렇지만, 벌써 (취임하고) 1년이 다 돼 가는 데 답답하기도 하고요. 국민의 신뢰 회복이 사법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입법의 문제도 있고. 그래서 (논의의) 물꼬는 대법원장이 터줘야만 합니다. 외부에서 (삼권분립 원칙 때문에) 행정부나 입법부가 먼저 나서기가 어려운 일이니까요. 검찰 수사가 끝나기를 기다릴 일도 아니죠. (대법원장이) 먼저 치고 나가야 하는데, 저러고 있으니….” 한 전직 대법관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김 대법원장의 무책임한 침묵에 지켜보는 눈들이 타들어 간다.

강희철 사회1에디터석 법조팀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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