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 수사와 관련해 2달간 굳게 닫혀있던 대법원 법원행정처 안방이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처음 열렸다. 하지만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 ‘수뇌부’에 대한 압수수색은 또 제동 걸렸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은 6일 오전 대법원 법원행정처 예산담당관실, 재무담당관실을 압수수색했다. 아울러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의 서울고법 사무실도 압수수색했다. 이 전 실장의 경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 상대 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검찰은 2015년 행정처가 각급 법원 공보관실 과·실 운영비로 책정된 3억5000만원을 빼돌려 각급 법원장과 행정처 실·국장들에게 ‘격려금’ 명목으로 나눠준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행정처가 일선 법원에 나눠준 운영비를 은밀하게 현금으로 다시 수금해 비자금을 마련한 뒤, 3월5~6일 열린 법원장회의에서 각급 법원 법원장들에게 수천만원씩 나눠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 가운데 7800만원은 공보관실 업무와 무관한 행정처 실·국장들에게 배정된 것으로 파악했다. 행정처가 이민걸 전 실장이 재임하던 2016년에도 같은 계획을 짰지만, 예산담당관의 저항으로 일부 차질을 빚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로써 그간 법원 문턱을 넘지 못했던 행정처에 대한 강제수사가 사실상 처음 개시됐다. 그간 일제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 법조비리 은폐 등 ‘재판거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행정처 압수수색은 번번이 이뤄지지 못했다. 다만 지난달 20일 부산 법조비리 은폐 의혹 관련 대법원이 열람등사를 거부한 부산지역 건설업자 정아무개씨에 대한 재판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송 개입 의혹 관련 전산정보센터에 대한 압수수색은 제한적으로 이뤄진 바 있다. 이번에 대법원이 공보관실 운영비를 쌈짓돈처럼 빼돌린 사실이 확인되면서, 행정처 압수수색의 ‘우회로’가 뚫린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당시 행정처 수뇌부에 대한 압수수색은 또 제동 걸었다. 검찰은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 강형주 차장, 임종헌 기조실장(2015년) 등 사무실과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모두 기각했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자료가 남아 있을 개연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이날 검찰은 곽병훈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현 변호사)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곽 전 비서관은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와 일제 ‘강제징용’ 재판을 연기하고 파기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외교부 관계자들에게 징용 재판에 의견서를 제출할 것 등을 요구한 의혹을 받는다. 또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 박채윤씨의 특허 소송 ‘뒤’를 봐주기 위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게 소송 자료와 소송 상대방 법무법인의 수임내역 등을 요구하거나 제공받은 의혹도 받는다.
곽 전 비서관은 이날 10시께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징용 소송 관련해 행정처와 계획을 협의했나”, “외교부 국장 등을 청와대로 불러 의견서 제출을 종용한 적 있나”, “김영재 원장(박채윤씨 남편) 특허소송 기록을 행정처로부터 받거나 요청한 적 있는가” 등 기자들의 질문에 “아는 대로 성실히 조사에게 임하겠다”고 답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