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15일 오전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그가 기소되면 재판은 누가 맡을까.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아무도 자기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In propria csusa nemo iudex).” 근대 사법에서 법관에 대한 제척, 기피, 회피로 발전한 고대 로마의 법언이다. 내가 내 사건을 재판한다면? 결론은 물어보나 마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사법농단 사건에 이 법언을 대입하면 어떨까. 그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거나 이미 검찰 조사를 받은 상당수 판사가 현직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그런 법원에 재판을 맡긴다면 공정한 판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 사건 초기부터 제기됐던 의문이다.
그렇다고 기존 법원을 무작정 배제하고 새로 법원을 창설하는 것은 정말로 위헌 소지가 크다. 그래서 일부에서 절충책을 제시했다. 기존 법원 안에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는 방안이다. 지난 7월쯤이다. 8월엔 여당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해, 현재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한동안 별 논의가 없던 이 방안을, 집권 여당이 23일 입법추진 항목에 올렸다. 그에 따른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주된 쟁점은 위헌 여부다. 국회가 특별법을 만들어 특정 사건 재판을 특정한 법관들로 구성된 특별재판부에 맡기도록 사법부를 ‘강제’하는 것이 헌법에 부합하는지를 놓고 여러 견해가 갈린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3일 특별법 입법추진 의사를 밝혔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에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사법농단과 관련 없는 법관들로 이뤄진 특별재판부를 도입해야 한다”며 “동의하는 야당과 (입법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왜 특별재판부가 필요한지를 부연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7곳 가운데 5군데 재판장이 사법농단 조사 대상자이거나 피해자다. 공정한 배당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법농단 연루자에게 재판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법원 스스로 진행하는 사건 배당은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시민 사회 단체에서도 특별재판부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3차 사법 적폐 청산 국민대회’에서는 참석자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과 함께 특별법 제정을 통한 ‘특별재판부’ 설치를 촉구했다.
사법농단 사건 재판이 당장의 현안은 아니다. 검찰이 넉 달 넘게 수사하고 있지만, 구속되거나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사람이 아직 없다. 그러나 이르면 11월 중 기소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입법 논의에는 적절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본격 입법을 추진한다면 그 ‘저본’은 박주민 의원이 지난 8월 대표 발의한 특별법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 의원은 다른 의원 55명의 동의를 얻어 지난 8월1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기간 중의 사법농단 의혹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형사 절차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사법농단 사건 1·2심을 전담할 특별재판부를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 설치 △재판부는 판사 3명씩으로 구성 △특별재판부 판사는 대법원 산하에 구성될 ‘특별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 △추천위 위원은 9명(대한변협 추천인 3명, 법원 판사회의 추천인 3명, 변호사 자격이 없는 각계 전문가 3명)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 추천위가 여러 제척 사유를 따져 특별재판부 후보자를 2배수 추천하면, 대법원장은 추천받은 날부터 1주일 안에 각 3명의 판사를 임명해야 한다.
대법원은 여당 쪽 움직임에 아직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고위법관이나 전·현직 판사들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며 도입에 반대하는 뜻을 밝히고 있다.
최완주 서울고등법원장은 지난 19일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위헌논란이 있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재판 공정성의 출발은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정 재판에 대해 특정인이 지정하는 식으로 재판부를 구성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신 법에 정해진 대로 재판장들의 협의를 통해 제척 사유에 해당하는 판사들을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서 배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사법부 내부의 3차 조사를 이끌었던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도 최 원장과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한 고위법관도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당연히 (특별재판부 설치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재판부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는 헌법에 의해 법관에게 위임된 사항으로 본다. 법원 안에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면 법관에 의한 재판이라는 ‘외양’은 갖출 수 있겠지만,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변호사 단체는 침묵하고 있거나 도입 찬성으로 갈린다. 박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에서 ‘특별재판부 후보 추천위원’ 중 3분의 1인 3명의 추천권을 갖게 돼 있는 대한변협은 아직 공식 반응이 없다. 민변은 일찌감치 지난 7월부터 사법농단 사건을 다룰 특별재판부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해왔다. 특별법을 발의한 박 의원이 민변 출신이다.
그러나 개인 입장은 다른 경우도 있다. 민변의 한 중진 변호사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일반론으로 보면 특정 사건을 다룰 특별재판부 설치는 아주 이례적이고, 논란의 소지가 분명히 있다. 물론 외국의 경우 그런 사례는 많이 있지만, 원칙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이미 우리 법에서는 재판부 제척, 기피, 회피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냐. (기소가 이뤄져) 배당이 된 뒤에도 얼마든지 문제 제기가 가능하고 담당 법관을 거를 수 있다”고 했다.
헌법학자들도 견해가 각기 달랐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별재판부를 설치한다고 해서 헌법에 위반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 특별법원을 창설하는 게 아닌 만큼 법원조직법에 합당하게 구성하면 문제가 없다. 헌법에 있는 법관의 자격(제101조 3항), 법원의 조직(제102조 3항)은 모두 국회의 입법 사항이다. 지금처럼 국민적 의혹과 불신이 제기된 마당이면 오히려 국회에서 논의되기 전에 사법부가 선제적으로 (특별재판부 도입을)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원 안팎에서 나오는 특별재판부 위헌론은 “법원이 입법을 못 하도록 일종의 ‘예방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서울 소재 한 법학전문대학원의 ㅈ교수(헌법학)는 조심스럽게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외형상 법원 안에 (특별재판부를) 넣고, 임명권자를 대법원장으로 해서 위헌 소지를 없애려 노력했지만,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특별법안에 있는 ‘특별재판부 후보 추천위원회’를 지목했다. 이 조항은 대법원장이 특별재판부에 속할 법관의 임명권을 행사하지만, 그에 앞서 후보자는 추천위가 추리도록 하고 있다. 즉 추천위가 추천한 사람 안에서 골라야 하며, 다른 선택지는 없다.
ㅈ교수는 “우리 헌법의 취지는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돼 있고, 지금까지 실제로도 대법원장이 이를 행사해 왔다. 그런데 추천위가 특별재판부 법관 후보자 추천을 통해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행사를 제약해도 되느냐는 본질적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사법행정권의 소재와 관련해 그게 대법원장에게 있는지, 아니면 법률로 제약할 수 있는 것인지를 두고 위헌 여부를 따지는 다툼의 소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특별재판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설치된다면, 헌정사상 첫 사례가 된다. 이를 두고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ㅈ교수는 “국회 다수가 어떤 사건의 재판이 맘에 안 든다, 그래서 ‘재판부 바꾸자, 다시 구성해!’ 하는 것이 (헌법 취지에) 맞냐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만약 이번을 시작으로 이런 일이 다른 재판에서도 반복된다면 위험하지 않겠나.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못지않게 사법권 독립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변 중진 변호사도 “한번 선례가 만들어지면 꼭 필요하지 않아도 정치적으로 만들어지는 특별검사처럼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우리가 ‘특검 원조’인 미국보다 더 자주 특검을 하고 있다”며 “이 사건은 그렇다 쳐도, 앞으로 일반인들이 아무나 ‘이런 재판 못 받겠다’, ‘재판부 갈아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부분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들려오는 얘기론 여당 법사위원 중에도 특별법의 ‘위헌 소지’를 지적하는 이가 여럿 있다고 한다. 홍 원내대표가 가장 먼저 맞닥뜨릴 ‘고개’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