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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법농단 재발방지, ‘법왜곡죄’가 답이다”

등록 2018-11-05 10:59수정 2018-11-05 16:53

강희철의 법조외전 (41) 국회로 간 ‘법왜곡죄’
고의로 법 비틀어 적용한 판·검사 등 처벌 가능하도록
형법개정안 심상정 의원 등 9월말 발의…독일 벤치마킹
진보적 법학자들 “사법권 남용에서 국민 보호” 지지
법복을 차려 입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3년 9월5일 대법관들과 함께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법복을 차려 입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3년 9월5일 대법관들과 함께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독일 같으면요, 이런 정도 사건은 ‘법왜곡죄’로 처벌합니다.”

사법농단 사건 특별재판부 얘기를 나누다 화제가 법왜곡죄로 옮겨갔다. 독일에서 헌법학을 공부한 김선택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법왜곡죄가 부재한 우리 현실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재판 등 사법작용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공정성이잖아요. 그런데 법관이 어떤 동기에서 의도를 가지고 일방 당사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판결을 했다? 그럼 독일에선 법왜곡죄로 처벌합니다. 더구나 지금 드러나는 것을 보면, 법관이란 사람들이 전부 우리 사회 ‘소수자’의 문제, 그런 사건을 자기들의 더 많은 이익을 위해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법왜곡죄가 없으니 직권남용죄가 되네 마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요.”

일제하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지난 31일 대법원이 최종 결론을 낸 이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 시절 ‘어떤 고의’로 5년 넘게 판결이 미뤄졌다(정확한 진상은 검찰이 수사 중이다). 법왜곡죄가 있다면 판결을 일부러 지연시킨(혹은 지연시키라고 지시한) 법관들에 대해 좀 더 명확하고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법왜곡은 독일어로 ‘Rechtsbeugung’이라고 적는다. 글자 그대로 법률의 왜곡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스페인 등에도 비슷한 내용의 법 조항이 있다고 한다.

독일 형법 제339조 - 법관, 기타 공직자 또는 중재인이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을 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한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

‘기타 공직자’에는 검사도 포함된다. 현재도 시행되고, 최근 판례도 있다.

지난 2014년 1월22일 독일연방행정법원-대법원의 하나. 독일은 대법원이 분야별로 모두 5개다-은 우리나라 지방법원에 해당하는 구(區)법원의 판사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 사건 재판을 맡았는데, 단속 기관이 관련 자료를 제때 보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거푸 무죄 판결을 했다가 법왜곡죄 위반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사건은 여러 차례 상소와 파기환송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대법원에서 “법관이 행정관청을 압박하려는 고의를 갖고 충분한 확인 없이 무죄 판결을 쓴 것은 중대한 잘못”이라며 유죄를 인정했다고 한다.

진보 성향 법학자들이 못내 부러워하던 이 조항이 얼마전 우리 국회에도 비슷한 형태로 제출됐다. 지난 9월28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 개정안에 이런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형법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제123조)죄 바로 뒤에 이 조항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사법농단 사건의 여파다. 심 의원 등은 법왜곡죄의 공소시효 적용을 없애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함께 냈다. 이런 사건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진상이 밝혀지거나 처벌이 가능해지는 경우가 많으니 공소시효의 제약을 두지 말자는 주장이다.

형법 제123조의2(법왜곡) 법관이나 검사가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처리에 있어서 법을 왜곡하여 당사자 일방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든 때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진보적 법학자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이 조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사법왜곡의 잘못을 저지른 판·검사에게 직접적으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지나치게 포괄적인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법기관이 사법권을 등에 업고 의식적으로 제도적인 불법행위를 해도 확실한 형사처벌을 받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은 (개인이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와 비교해도)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 법왜곡 행위를 처벌하려는 이유는 사법권 행사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전지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관의 법왜곡은 고의적인 사실관계의 조작 혹은 증거의 의도적 배제나 무시로 나타날 수 있다. 부당한 법 적용이나 해석, 일방 당사자의 (증인) 신청 거부 등의 형태로도 가능하다. 형량을 정하는 양형, 피의자의 구속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법관이 이런 문제로 처벌받은 사례는 지금껏 없었다. 전·현직 법관들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적용해 수사하는 것은 사법농단 사건이 처음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영장에도 이 조항이 적시됐다.

그런데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하는 이 조항은 꽤 오래 전부터 한계가 지적돼 왔다. ‘직권’도 ‘의무없는 일’도 추상적이고 막연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법원이 까다롭게 보고, 기소 대비 유죄 비율도 높지 않다.

최근엔 ‘직권’, 즉 직무권한의 범위를 놓고 판결이 엇갈렸다. 대기업들에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출연을 강요한 박근혜 대통령에겐 유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부는 달랐다. 이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 관여가 대통령의 ‘직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사법농단 사건을 의식해서든 아니든 최근 판결 추세는 좁게 본다는 것이다.

임 전 차장 쪽은 이를 근거로 법원행정처 차장은 재판에 영향을 끼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한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임 전 차장 등을 기소해도 법원이 ‘법리’를 앞세워 무죄 판결을 쓸 거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공개 소환된 전·현직 법관들. 왼쪽부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구속), 이민걸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변호사),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한겨레 자료사진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공개 소환된 전·현직 법관들. 왼쪽부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구속), 이민걸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변호사),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한겨레 자료사진

물론 법왜곡죄가 신설된다고 해도 사법농단 사건에는 ‘적용 불가’다. 행위 시의 법률이 아니니 소급 적용은 할 수 없다. 그러나 법 도입 이후 비슷한 사건이 재발한다면 처벌이 가능해진다. 처벌 말고도 경고와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법왜곡죄는 판사뿐 아니라 검사의 법왜곡도 포괄한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기소편의주의-할 수 있는 한국의 검사는 수사와 기소에서 재량권이 크다. 실체적 진실과는 다른 방향으로 수사할 수도 있고, 마냥 미루거나 특정 당사자를 봐주는 권한 남용도 가능하다. 심지어 혐의가 있어도 수사하지 않을 수 있고, 혐의가 드러나도 기소하지 않을 수 있다. 과거에는 검찰 ‘윗선’에서, 혹은 법무부를 통해 집권세력이 수사를 좌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권위주의 독재 시절 장기간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낸 시국사건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관여 검사가 처벌받은 사례는 전무하다. 불법체포·감금이나 폭행·가혹 행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면 의혹이 제기돼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갔다. 권위주의 시대만이 아니다. 내용을 완전히 비틀거나 뭉갠 국정원 댓글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황제 소환’으로 비난받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는 물론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 등 최근 사례도 법왜곡죄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법왜곡의 판단 기준은 뭘까. 독일 연방대법원의 판례는 매우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법왜곡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판사의 결정이 용납할 수 없는 것’(die Unvertretbarkeit einer Entscheidung)이라는 요건으로는 부족하고, (ⅰ) 법관의 결정이 사법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침해에 해당할 정도로 중하여 사법기능의 불가침성에 대한 공중의 신뢰가 흔들린 경우 (ⅱ) 법관의 결정이 의식적으로 중대한 방법에 의해, 그리고 법의 잣대가 아닌 자의적 기준에 의해 내려진 경우라는 두 가지 기준이 더 충족될 경우에 법왜곡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조항은 악용될 소지가 있다. 판결(결정)에 대한 불신·불복이 많은 우리 현실에선 판·검사들이 사건 당사자 등의 고소·고발에 상시적으로 시달릴 위험이 크다. 무고죄가 있으니 남발 여부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직무 독립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고의로 사건을 왜곡했다면 현행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한데 구태여 법왜곡죄까지 필요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에선 ‘왜곡’의 개념이 모호하다며 헌법이 정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맞은 편엔 법률이 시행되고 판례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는 반론도 있다.

법왜곡죄를 신설한다면 제일 중요한 건 ‘고의성’의 입증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판사나 검사가 자백하면 모를까. 그런데 누가 일부러 그랬다고 자백하겠나. 지금도 만약 판사가 일부러, 의도를 가지고 유죄나 무죄, 승소나 패소 판결을 한다면 허위공문서 작성으로 처벌할 수 있다. 검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자꾸 법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 든다. (한 검찰 간부)

그러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총체적으로 붕괴된 지금 상황을 엄중하게 보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세한 법 문제를 따지기보다 문제의식의 ‘본령’에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거 특별검사제 도입할 때가 생각난다. 애초에 검찰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둥 갖은 명분을 동원해 무조건 막으려고 애썼다. 한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조직 내부에서 사고(대검 공안부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가 터지면서 더는 저항할 수 없게 됐다. 지금은 과거 특검이 처음 도입될 때의 상황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사법농단 사건이 터진 뒤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사법불신은 상상 이상이다. 책임자 몇 사람 잡아넣는 것으로 끝낼 수 있을까. 여론이 바뀌고 국회가 결정하면 법왜곡 죄보다 더한 것도 도입할 수 있는 것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문제는 오히려 국회다. 법안이 발의되고 한 달 남짓 지났지만, 아직 정치권의 논의는 잠잠하다. 법안 서명 의원은 12명뿐이고, 이름을 올린 여당 의원은 5명에 불과하다. 특별재판부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는 민주당이 이 법안에 관심을 보인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역시 눈길은 검찰 수사에만 쏠려 있을 뿐 ‘그 이후’에 대한 논의는 관심 밖이다.

김선택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법왜곡죄 도입이 하루 아침에 되겠습니까. 사법부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래도 끈기를 가지고 해봐야죠.”

※ 이 기사를 쓰면서 다음의 논문을 참고 또는 일부 인용했습니다. △‘법왜곡죄 도입의 필요성과 논거’(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왜곡죄의 도입방안’(전지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왜곡 행위와 사법살인의 방지를 위한 입법정책’(허일태 동아대 법대 교수)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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