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3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사법농단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전직 대법관 구속영장 청구 자체가 사법부 역사상 처음이어서, 영장을 받아든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또 두 사람의 구속 여부와는 상관없이 향후 검찰 수사는 이 사건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소환 및 처벌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두 전직 대법관의 혐의와 관련해 “개인적 일탈이 아닌 업무상 상하·지시관계에 따른 범죄 혐의”라고 규정하고 “더 큰 결정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로서,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상의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구속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두 사람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이던 2014년 2월~2017년 5월 법원행정처장을 연이어 맡아, 행정처 2인자였던 임 전 차장에게 재판 개입 및 법관 사찰, 인사 불이익 등을 지시하고 보고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청구서 분량만 A4 용지로 158쪽, 108쪽에 이른다.
검찰은 ‘하급자’인 임 전 차장이 이미 구속기소된 만큼 ‘상급자’인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수사 역시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혐의 내용을 부인하고, 일부는 하급자들의 진술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고 전 대법관은 부산 법조비리 사건을 무마하려 재판 진행에 개입한 사실은 인정했다고 한다.
사법농단 ‘실무’를 총괄한 임 전 차장에 대한 수사가 충분히 이뤄진 상황이어서, 박 전 대법관은 첫 공개소환(지난달 20일) 이후 2주 만에, 고 전 대법관은 첫 조사 열흘 만에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두 전직 대법관의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으로 구속기소된 임 전 차장의 혐의와 대부분 겹친다. 임 전 차장 공소장에는 박 전 대법관이 31차례, 고 전 대법관은 18차례 ‘공범’으로 적시됐다. 여기에 ‘양승태·박병대·고영한’ 세 사람을 하나로 묶는 핵심 혐의인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및 불이익 조처 등이 추가됐다.
두 사람의 구속은 이르면 5일 밤 결정된다. 지난 10월 말 임 전 차장의 구속을 허가하며 수그러드는 듯했던 영장 기각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근 법원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법관 130여명의 인사자료 가운데 단 2명에 대해서만 압수수색영장을 내줬다. 두 전직 대법관이 행정처 요직과 일선 법원장 등을 두루 거친 만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들과 근무연 등으로 얽혀 있다. 앞서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은 행정처 근무 경험이 없는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발부했다.
구속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다. 두 전직 대법관은 검찰 조사에서 ‘정당한 지시였다’ ‘밑에서 알아서 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임 전 차장 구속의 연장선에서 두 사람의 구속영장을 모두 발부하면 초유의 전직 대법원장 구속 가능성도 커진다. 반면 두 사람 모두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법원이 안아야 할 부담과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두 사람 중 혐의가 더 중한 박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만 발부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최우리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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