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복(62) 전 대법관이 사법농단 의혹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주요 수사 대상자로 검찰에 소환된 4번째 전직 대법관이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9일 이 전 대법관을 비공개로 소환해 조사했다고 밝혔다. ‘피의자성 참고인’ 신분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 전 대법관에 대해 “중요한 수사 대상자 중 한 명이다. 단순 참고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법관은 검찰 소환에 불응하다 비공개를 전제로 소환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 전 대법관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이 전 대법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했던 그가 2014년 법원행정처의 개입 사실이 드러난 통합진보당 잔여재산 가압류 소송 ’원고’인 중앙선관위와 행정처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이 전 대법관은 행정처의 검토보고서를 선관위에 전달한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참고하라고 줬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전 대법관이 대법원 1차 진상조사위원장 시절 진상 조사와 관련해 은폐 시도가 있었는지도 조사했다. 이 전 대법관은 지난해 초 이탄희 판사로부터 촉발한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을 26일간 조사한 대법원 진상조사위원장이었다. 당시 진상조사위는 행정처가 제출한 자료를 중심으로 조사한 뒤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한 파일이 따로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어떠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단정적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이 지난달 행정처를 압수수색해 대법원에 비판적인 판사에게 인사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만든 문건을 확보하면서, 부실·은폐 조사 의혹이 제기됐다.
이날 수사팀 관계자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나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이 조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어떤 말을 했고 실제 조사가 어땠는지 본인 입장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법관은 자료 제공을 받지 못했고, 판사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를 일부러 조사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는 이 전 대법관의 재판 관여 행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을 결정한 직후, 중앙선관위는 법원에 통진당 중앙당 및 시·도당이 보유한 예금채권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했다. 법리적 논란이 불거지자 행정처는 청와대로부터 “가압류 적절성을 검토해달라”는 ‘법률 자문’ 요청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중앙선관위 위원장이던 이 전 대법관이 중앙선관위 직원들로부터 ‘선관위 내부 법리검토 및 전체 사건 현황’ 자료를 받아 행정처에 전달했고, 행정처는 다시 대법원 재판연구관 3명에게 법리검토를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재판연구관들은 ‘가압류보다는 가처분이 적절하다’는 검토의견을 냈고, 이는 전국의 통진당 사건 담당 판사들에게 전달됐다. 해당 판사들은 검찰 조사에서 “당시 의견을 검토하는 과정에 청와대나 중앙선관위가 개입한 것은 꿈에도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결국 그 중간 연결고리를 이 전 대법관이 맡은 셈이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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