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기호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검찰이 ‘판사 블랙리스트’ 관련해 2012년 재임용에 탈락한 서기호 변호사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 중이다. 16일 오후 2시부터 검찰 조사를 받는 서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법원행정처가 나의 재임용 탈락을 기정사실로 하고 예상 시나리오를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서 변호사의 말을 들어보면,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은 2012년 2월1일 ‘연임 적격 심사 관련 대응 방안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는 서 변호사의 재임용 탈락을 전제로 한 날짜별 예상 시나리오와 대응 방법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서 변호사의 소명절차(법관인사위원회가 열린 2월8일로 예상)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원론적 대응할 것, 소명 절차 이후 대법원장 통지(2월10일)까지도 원론적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법원장의 통지 이후에는 일부 법관과 법원 직원들의 동조가 예상되고 행정심판,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 담겼다고 한다. 2012년 법관인사위원회는 실제로는 2월7일 열렸다.
행정처는 재임용 탈락이 확정되자 또 대응 문건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해 2월13일자 ‘연임심사 이후 대응방안’ 문건을 보면, 일부 판사들이 재임용 탈락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글을 법원게시판에 올린 것을 두고 코트넷(게시판) 실시간 모니터링과 게시글 삭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시민단체나 정치권과의 연대가 이뤄질 경우 서 변호사를 설득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또 판사들이 제도 개선 논의 요청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3~5월 개선안 마련 계획도 만들어두었다고 서 변호사는 전했다. 서 변호사는 행정처가 그해 9월11일 ‘서기호 소송 관련 검토 보고’ 문건을 통해 재임용 탈락 불복 소송과 관련한 소송대응팀을 꾸리도록 한 사실도 검찰 조사에서 확인했다고 알렸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13일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2012~2013년 인사 불이익 관련 문건을 확보했다.
서 변호사는 지난달 11일 첫 번째 참고인 조사를 받으며 재임용 탈락 불복 소송에 행정처가 개입됐는지를 확인했다. 서 변호사는 이날 행정처가 2013년 9월1일자로 작성한 '서기호 의원 소송의 현황 및 대응 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확인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문건에는 서 변호사의 재임용탈락 취소 행정소송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비공식적으로 요청하는 방안과 기일지정을 신청하는 방안 등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서 변호사는 “2013년 9월 소송 10개월 만에 갑자기 변론기일이 잡혀 의아했는데 법원행정처가 개입했다는 증거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2012년 8월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재임용 탈락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2017년 3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서 변호사는 지난 2011년 1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하며 ‘가카의 빅엿’이라는 글을 썼다가 논란이 됐다. 다음 해 2월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그해 4월 당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정의당 원내대변인으로 활동했다.
글·사진/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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