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자신의 집 근처 공원에서 판사 뒷조사와 재판 래 의혹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성남/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검찰 소환 조사에 앞서 대법원에서 입장문을 발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법원장 재직 시절 범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피의자가 자신의 재판을 맡을 기관을 들러리로 세워 검찰을 압박하려는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9일 취재진에게 “검찰 출석 직전인 11일 오전 9시께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소회 등 입장을 발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본인이 최근까지 오래 근무했던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건물 내부는 아니고 정문 안쪽 (대법원 현관 진입) 로비에서 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양 전 대법원장 본인은 물론 전직 대법관 등까지 재판에 넘겨지는 초유의 상황에 대한 심경 등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예상치 못한 전직 대법원장의 ‘경내 진입’ 시도에 당황한 기색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현재까지 대법원과 진행된 협의는 없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변호인 쪽은 “협의가 안 되면 정문 밖에서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대법원 건물을 등에 지고 입장을 밝히겠다는 양 전 대법원장의 태도에 법조계에서는 ‘고도의 재판 전략’이자 ‘제왕적 대법원장’ 행태라고 비판했다. 한 판사는 “전두환도 수사받으러 갈 때는 청와대 앞이 아닌 자기 집 골목에서 성명을 내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한 변호사는 “향후 재판을 맡을 법원에 부담을 주고, 자신의 ‘수난’을 공개해 법원 내부의 반발을 이끌어내려는 책략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직 대법원장으로 처음 검찰 조사를 받는 양 전 대법원장이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 첫 소환 조사 때 검찰청 포토라인에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조사 당일인 11일에는 서울중앙지검과 대법원 주변에 양 전 대법원장 처벌을 촉구하거나, 반대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단체의 기자회견 등이 예정돼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에서의 입장 발표를 고집한다면 충돌도 일어날 수 있다. 경찰은 양 전 대법원장 동선을 따라 근접 경호할 예정이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이 전 대통령 조사 때 수준의 안전 조처를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1일 오전부터 일반인의 서울중앙지검 청사 출입은 제한된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 소환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옥중 조사’를 시도하는 등 막바지 보강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날 오전 ‘박근혜 청와대-양승태 대법원’ 사이 대표적 재판거래 의혹으로 꼽히는 일제 강제노역 사건 재판 지연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신봉수 특수1부장 등 수사팀을 보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 재판 등에도 불출석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거부로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재상고심 지연 등을 논의한 두차례 비공개회의에 청와대(김기춘), 외교부(윤병세), 법무부(황교안), 안전행정부(정종섭), 법원행정처(차한성·박병대) 등을 총동원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은 박 전 대통령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임재우 김양진 최우리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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