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학부모 졸업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의 졸업을 앞두고 학부모끼리 뭉친 것이다. 학부모들은 적게는 고교 3년, 길게는 중학 시절부터 6년가량을 ‘학교 공동체’ 일원으로 동고동락한 사이다. “낮에는 아이들이, 밤에는 부모들이 학교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면 감이 잡힐까? 이 공동체의 불성실한 일원으로 염치없이 동참한 여행이었지만, 뜻깊고 온기 어린 여정이었다.
1박 2일의 여행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곳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었다. 일주문 앞부터 사찰 입구까지의 1㎞에 이르는 길 양쪽으로 죽죽 뻗은 전나무가 군락을 이뤄 빼어난 경관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군데군데 죽어가는 나무가 눈에 띄는 게 아닌가. 이번 여정을 함께한 학부모, ‘지웅이 아빠’(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에게 묻자 외려 반문한다.
“수십년 뒤에도 이 숲이 이대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어진 그의 설명과 환경단체의 조사 결과를 모아 보면, 구상나무, 분비나무 등 고산 침엽수의 떼죽음은 이곳 오대산을 비롯해 지리산, 설악산, 태백산 등 한반도 주요 서식지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었다.
원인은 ‘기후위기’에 따른 수분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기실, 사과 재배지가 영남에서 강원으로 북상하고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가 동해안에서 자취를 감추거나, 미세먼지가 대기권에 똬리를 틀며 폐를 위협하는 등 한반도 기후위기의 증거들도 차고 넘친다. 세계를 놀라게 한 오스트레일리아 산불의 재앙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닌, 우리 곁에 일상의 위협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무디고, 특히 정치와 미디어의 대응은 굼뜨거나 레토릭만 무성하다.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에서는 질문조차 없었고 답도 없었다. 오는 4월 총선에선 어떨까? 주요 정당의 의제가 될까? 지금으로선 이 어젠다가 정치적 관심사의 앞자리에 놓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공론과 정치 외에는 세계 네번째 ‘기후위기 악당국가’에서 탈출할 방책 또한 없다.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했던가. 학부모들은 이번 여행에서 독서모임 등을 통해 관계와 연대의 끈을 이어가기로 결의했다. 이 모임의 독서토론 주제로 기후위기 정치를 제안해볼까?
이창곤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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