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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이재용 부회장이 사과할 대상은 ‘국민’만이 아니다

등록 2020-05-07 16:51수정 2020-05-08 02:46

노조 탄압에 극단적 선택한 고 최종범·염호석씨
‘대책없이’ 무늬뿐인 사과 받은 반올림 황상기 대표
베트남 삼성 공장 입사 4개월 만에 숨진 르우티타인떰
경영 승계 과정서 피해 입은 소액주주와 국민까지
“말뿐인 사과는 기만적이다. 제대로 된 피해구제와 죗값 치러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333일째 25m 높이 쇠바구니에 있는 김용희씨를 비롯해 피해자문제 해결 없이 한 사과는 기만에 가깝다.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직접 사과와 문제 해결 방안은 없었다.”

7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삼성피해자공동투쟁 활동가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의 노동 탄압 문제 등을 두고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빠져 있으므로 진정성 있는 사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지적처럼 이 부회장의 형식적 사과로는 부족한 ‘삼성 피해자’들은 많다.

2013년 10월31일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노조원 최종범씨는 “삼성전자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메시지를 남긴 뒤 숨진 채 발견됐다. 노조 출범에 기여한 조합원이라며 협력업체 센터장이 일감을 주지 않아 생활고가 극심해진 탓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시달리던 양산센터의 염호석 분회장도 2014년 5월 숨진 채 발견됐다. 염 분회장은 ‘주검 탈취사건’까지 겪으며 숨진 뒤에도 삼성의 장례 개입으로 편히 눈감지 못했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조사에선 경찰이 염씨의 사망 사실을 확인한 뒤 실종신고자보다 삼성에 먼저 보고한 사실이 밝혀지는 등 삼성의 지시에 따라 주검 탈취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계자는 “두 사람의 죽음에 삼성이 사과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이 부회장이 사과한 당일에도 삼성 계열사 전반에서 노사협의회를 통해 노조 활동을 옥죄고 방해하는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3년 삼성 기흥 반도체 공장에 입사했다가 2007년 3월 급성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가족도 삼성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 아버지이자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대표인 황상기씨가 산재 신청을 했지만 당시 삼성은 황유미씨의 백혈병이 ‘직업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10년 넘게 이어진 투쟁은 2018년 11월23일 삼성의 공식 사과를 포함한 조정위원회의 중재 판정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당시 삼성은 백혈병 발생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부분적 관리 책임만을 인정했다. 황상기씨는 이 부회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뒤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가 화학 약품에 의해 죽거나 병에 걸리거나 가족이 파탄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화학약품을 제대로 관리 못한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이 들어있지 않는 이상 사과가 아닌 재판 형량을 줄이기 위한 면피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베트남 삼성 공장에서 일하다 2016년 8월31일 22살에 숨진 르우티타인떰도 있다. 건강검진 결과 아무 신체적 이상 없이 삼성에 들어간 떰은 입사한지 4개월만에 숨졌다. 유가족들은 떰이 환기 효율이 낮아 화학약품이 오래 머무는 ‘클린룸’에서 주로 일했다며 유해물질 노출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삼성은 떰의 가족에게 사과하지도, 죽음의 원인을 설명해주지도 않았다. 과거 황유미씨 가족에게 벌어진 일과 판박이다. 조승규 반올림 노무사는 “해결을 촉구하는 떰 오빠의 편지를 지난해 9월 삼성 앞에서 직접 읽기도 했지만 사과는 물론 별다른 삼성의 반응도 없었다. 지금 싸우고 있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없는 이 부회장의 대국민사과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삼성바이로직스 가치 부풀리기 등을 통해 이뤄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소액 주주들도 명백한 피해자다. 소액 주주들은 지난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부당합병 관련 주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들은 합병 전 삼성물산 영업이익이 제일모직보다 3배 이상 높았는데 합병 비율이 0.35(삼성물산) 대 1(제일모직)로 진행되는 바람에 소액주주들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 역시 삼성에게서 구체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다. 이 부회장의 사과 직후,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피해를 본 국민들에 대한 사과가 포함되지 않았다. 말 뿐인 사과는 기만적이며, 이재용 부회장은 제대로 된 피해구제와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가 작성한 ‘이재용 부당 승계와 삼바 회계사기 사건에 관한 종합보고서’를 보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국민연금의 손실 규모는 최대 6750억원에 이른다.

이 부회장의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은 2008년 차명계좌 의혹으로 특검이 진행되자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대국민사과와 함께 회장직에서 물러났다가 무혐의 처분 뒤 회장으로 멀쩡히 복귀한 바 있다. 이번 사과 역시 쇼로 기억될지, 행동이 수반되는 진정한 사과로 기억될지 선택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달렸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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