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이아무개 중사의 분향소에서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이 중사는 지난 3월 선임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신고한 뒤 두 달여 만인 지난달 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지휘관 이·취임식 행사 시 지휘관 가족을 에스코트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자동차 하차 시 문 열어주기, 차 접대하기 등의 역할을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자괴감을 느꼈습니다.”(여군 부사관 ㄱ씨)
“보건휴가(생리휴가)를 사용하는 것조차도 지휘관 눈치를 보게 되고, 심지어 지휘관이 날짜를 기억했다가 ‘지금 할 때 아닌 것 같다’고 말해 매우 수치심을 느꼈습니다.”(여군 부사관 ㄴ씨)
9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2018 부사관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여군 부사관은 군 생활 전반에서 성차별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8년 인권위는 장병 15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이 가운데 남성 92명·여성 79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했다.
심층면접에 응답한 여군 부사관들은 군 내에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군 상사 ㄷ씨는 “여성과 근무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지휘관은 여성의 업무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에서 시작해 으레 ‘여성은 피곤하다’, ‘여성은 약하다’ 등 본인의 주관적 경험에 의한 신념으로 여성을 대한다”고 말했다. 여군 중사 ㄹ씨는 “남성 부사관은 여성 부사관이 전입해 오면 피곤하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지배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군 부사관들은 이러한 차별적 인식이 진급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여군 부사관으로서 부대근무 시 가장 어려운 점’에 관해 물은 결과 인사관리(24.5%)가 육아·자녀교육(28.8%)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여군 하사 ㅁ씨는 “보직을 정할 때 여성에게는 아예 전투병과 보직은 주지도 않거나 묻지도 않는 것은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해군에 복무하는 여군 중사는 “배를 타면 진급에 필요한 2점을 받을 수 있는데, 여군에게 기회가 적은 것은 차별”이라며 “‘네가 가면 진짜 타야 할 사람(남군)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 되니 양보하라’고 권유한다”고 말했다. 여군에게 보직 선택의 기회가 제한되고, 업무에 따른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구조인 것이다.
화장실, 탈의실 등 야외훈련장의 여군 전용 생활시설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여군이 야외 훈련을 가면 여군 전용 생활시설을 추가로 설치해야 해 동료 군인들이 “‘안 해도 되는 일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속 부대의 야외훈련장에 여군 전용 생활시설이 “전혀 없다”는 응답은 30%에 이르렀다. 여군 전용 화장실이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 대처 방안으로는 인근 부대·민간인 시설 이용(35.3%), 남성과 공용 사용(23.5%) 등이 있었고 “참는다”는 응답도 20.2%에 이르렀다.
이 밖에 출산과 양육, 보건휴가·육아휴직 사용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임신·출산 휴가, 보건휴가, 육아휴직을 다른 사람의 눈치를 안 보고 자유롭게 신청해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 결과 60.1%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고, 24.7%는 보통, 15.2%는 제한된다고 답했다. 여군 부사관 가운데 성희롱을 당했거나, 피해장면을 목격, 피해 관련 소문을 들었다고 응답한 사례는 모두 61건으로 남성 부사관(30건)의 두 배가 넘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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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현직 여군 부사관 64% “성범죄 피해 직접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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