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어진/칼럼니스트
여성살이 2050/
교직에 있는 친구 하나, 50 평생을 베이지나 회색 정장 속에 몸담고 살아왔다. 얼마 전 모임에 나온 그녀의 변신이라니. 붉은 매니큐어에 재단선이 날렵한 원 버튼 레드 재킷 차림이었다. 친구들의 환호성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녀가 나직하게 던진 한 마디. “너무 억울해서 그래.”
무슨 억울한 일? 썩 괜찮은 직종인 교직에다 인간성 좋은 남편. 아들 딸도 구색 맞춰 하나씩이고, 은퇴한 뒤에 살 전원주택까지 양평에 짓고 있는 그녀가 말이다. 너무 모범답안처럼 살아 가끔 답답하게 보이기까지 했던 친구. 시댁 인물들과의 관계에선 전통 예절을 충실히 지켜왔다. 맞벌이면서도 남편에게 가사 분담을 소리쳐 외치지 않았던 그녀,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야유와 외경심을 동시에 보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 와서 억울하단다. 시댁에 너무 머리를 조아리고 살았던 것도 억울하고, 남편과 자식들을 윗전 마마로 섬기고 살았던 것도 억울하고, 완벽주의 살림꾼 소리를 듣고 싶었던 자신의 허영심마저도 억울하다니. 한 마디로 ‘범생이 인생’으로 살았던 게 억울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곤 이 대처하기 어려운 심리적 난적, 억울함을 상대로 붉은 복수전을 펼치고 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친구들은 나이 50을 전후로 레드 컬러에 한번씩 꽂힌다. 직장의 드레스 코드 때문에 근엄한 감색이나 다크 그레이 계열 옷 속에 자신을 가둬 온 친구들일수록 느닷없는 교란 상태에 빠지는 것 같다. 진달래빛 블라우스를 사들이질 않나 오렌지빛이나 연두빛 바지를 태연하게 입고 출근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모든 게 이 무렵 조금씩 우리 몸속을 빠져 나가는 에스트로겐의 장난 같다. 몸 속 화학공장 가동체계의 전환으로 생물학적 여성성이 소멸하는 완경기. 그 경계선에서 듣는 메시지는 그러므로 지난 50년 삶속의 결핍을 직시하며 균형을 회복하라는 것일까? 반성문을 쓰든 표창을 하든 스스로 삶의 방식을 되돌아 보게끔, 또 다가올 새 날들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모양으로 약간의 우울증을 선물로 받기까지 한다.
레드 재킷을 입은 친구가 그 전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자신이 설정했던 금기를 깨버린다는 것, 좋은 조짐이다. 본인만 가볍고 경쾌해진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덩달아 기분이 밝아진다. 완경기라는 전환기를 자기 해방의 원년으로 삼은 그녀, 앞으로 더 많이 변할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박어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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