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효경/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나에겐 자주색 교복 치마에 어울리지도 않는 초록색 체육복 바지를 받쳐 입고 신나게 고무줄을 하고 놀았던 5명의 여중 친구들이 있다. 관심도, 키도, 성적도, 얼굴도, 사는 형편도 모두 달랐지만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정을 키워온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런데 이십대 중반을 넘어선 지도 어언 몇 년째,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남자 하나씩 꿰차더니 아주 그대로 결혼까지들 골인한단다.
아니나 다를까, 봄을 맞아 슬슬 또 결혼 소식이 들려올 때가 되었다 싶더니 “야, 00이 날짜를 잡았어”라며 전화가 왔다. 그리고 냉큼 한다는 소리가 “넌 밖에 나가 있으니 축의금 계좌로 보내라~”란다. 우리는 돈을 모아서 일정 금액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나만 안 내고 빠질 수는 없다는 이유다, 영악한 기집애들. “야, 나 학생인데 돈 없거든”이라고 불평하니 “아니꼬우면 결혼하든가, 호호”라고 대꾸한다. 아, 너무 얄밉다.
나는 축의금 내기가 유난히 싫다.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나라고 왜 소중한 친구의 평생에 한 번 있는 경사에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나는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알아서 친구들 선물을 챙긴다. 종종 밥을 사는 것도 좋아한다. 친구들에게 돈 쓰는 것 자체가 아까운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축의금은 이렇게 내기가 싫을까?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렇게 싫은지 물어봤지만, 어차피(!) 나중에 자기도 받을 거라고 생각하니 꽤 부담되는 돈인데도 기꺼이 내게 된단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 짜증은 바로 비혼인들을 고려해 주지 않는 축의금 제도 때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앞일이야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지금 결혼을 생각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말은 앞으로 나는 생일을 제외하고 친구들로부터 공식적으로 축하받을 수 있는 이벤트를 하나도 가질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싱글들에겐 사람들에게 축하받을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다. 나는 결혼식 축의금에 이어, 아이들의 돌잔치, 초·중·고·대학 입학, 심지어 그 아이들의 결혼까지 신경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비혼 여성인 내게는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생돈을 들여서 평생 남 좋은 일만 해줘야 한단 말이냐! 그렇다고 축의금 때문에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할 수도, 소중한 친구와 인연을 끊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작은 결심을 했다. 5년 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이 모두 결혼하고(지금 속도면 충분히 가능하다!) 내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는 그날, 나는 친구들에게 축의금을 부탁하는 상큼한 문자를 날릴 것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야겠다. 이른바 가방끈 더럽게 긴 여자의 책걸이 기념 여행! 충분히 기념할 만한 날이고, 많이 축하받아야 하는 일 아닐까?
친구들아, 나는 너희를 참 좋아한다. 그러니까 내가 너희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우정이 아니겠니? 우효경/칼럼니스트
친구들아, 나는 너희를 참 좋아한다. 그러니까 내가 너희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우정이 아니겠니?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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