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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불운 대처법 ‘내 안의 힘을 믿어라’

등록 2008-02-28 21:05

박어진/칼럼니스트
박어진/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경주 시엄마께서 올 한 해 내 신수가 좋지 않다고 걱정하신다. 인근 모량에 있는 전문가에게서 자식들과 손주들의 일년 운수를 뽑으시는 게 정초의 연례행사. 이번에도 각자 주의사항을 적은 쪽지를 나눠주신다. 음력 4월에 척추를 다칠 위험을 경계하라는 구절. 가슴이 철렁한다. 일종의 은유일까? 신체적 위험 같기도 하고 마음의 큰 상처를 경고하는 듯 들리기도 하니 말이다. 태연한 척하려 해도 겁이 난다. 대책은 나쁜 운수가 쳐들어오지 못하게끔 하는 방새 작업. 입던 속내의 한 장에다 손톱, 발톱을 깎아 모아 정월 대보름날 감포 바닷가에서 열리는 대규모 액운 예방집회에 참여하는 거란다. 예전엔 짜증내던 일인데 이번엔 고분고분 지침을 따른다.

20대나 30대였을 때도 나는 겁이 많았다. 행여 남들보다 불운할까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초년고생이 심할뿐더러 두 번 시집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저주처럼 들렸다. 당시로선 치명적인 불운이었으니. 50을 넘긴 지금, 나이가 주는 깨달음 중 하나는 뭔가에 매달리거나 연연하게 되면 그것들이 나를 무시하고 깔본다는 것. 내가 운명이나 사주팔자의 눈치를 보면 그것들이 나를 지배하고 깔아뭉개려 들 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선지 언제부터인가 운명 감정에 흥미를 잃었다. 강한 척, 씩씩한 척 행동했고, 그렁저렁 세상에 무서운 게 없어져 내 자신 해방된 인간인 줄만 알았다. 사주팔자 운명으로부터, 또 그 외 무엇으로부터든 말이다. 그런데 또 슬그머니 겁이 나 손발톱을 깎아 모으고 있는 나. 도대체 줏대가 없다.

스스로를 비웃는 한편, 불운에 대처하는 방법을 곰곰 생각한다. 올 한 해 근신해야겠다는 각오. 그러나 겸손은 힘들다. 신체적 부상이든 마음의 시퍼런 멍이든 예방이 불가능하다면 담담히 맞아야겠지. ‘넘어져 크게 다칠 위험’은 생애 곳곳에 잠복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나이만큼의 지혜로 위기에 맞설 수밖에. 넘어질 때 일어나는 법을 배웠듯이 삶의 위기에서 다시 일어나는 힘도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운명대로가 아니라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낼 역량이 내 안에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미처 몰랐던 위기대처 능력이 위기로 말미암아 그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을 터. 이제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평소 꿈꿔온 담대함과는 턱없이 멀지만 말이다. 진짜 안심되는 건 따로 있다. 시집온 지 24년, 이미 헌색시가 된 며느리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칠순의 시엄마가 계시다는 것.

박어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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