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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딱 한번 남자가 부러울 때

등록 2008-04-03 22:24수정 2008-04-03 22:39

우효경/칼럼니스트
우효경/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나는 좀처럼 남자들이 부럽다거나 다음 세상에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딱 한 가지 정말로 남자들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대학생 시절 학과 행사를 준비하느라고 새벽 1시(열혈 청춘이었다)까지 동기들과 ‘과방’에 있다가 기숙사까지 한 남자 동기와 함께 걸어온 적이 있다. 가로등 불도 다 꺼버려서 달빛에 의지해 걸어가는데 정말 무서웠다. 문득 내가 ‘으아, 무서워. 진짜 혼자 가다가 누가 뒤에 따라오면 기절할지도 모른다. 사람(남자)이 제일 무섭다’고 했더니, 그 애는 냉큼 ‘난 귀신이 제일 무서운데’라고 했다. 그 순간 난 강렬한 질투에 휩싸였다. 물론 귀신은 무섭다. 그래도 정체 불명인 남자보다는 덜 무섭다. 그러나 그 친구는 남자라는 이유로 한 번도 슬그머니 뒤를 따라오는 남자의 공포를 느낄 일이 없었던 것이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일부러 페이스를 늦추거나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고, 가짜로 통화를 하는 척하는 종류의 공포를 그는 겪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리라.

근래 잔인하게 살해된 여성들 기사를 보며 여자로서 무서워서 세상 살겠나 싶다. 어머니와 딸들이 살해당하고 어린 여자 아이들이 실종돼 토막난 채 발견되고, 여자 중학생들도 실종되고 도우미 아가씨(?)도 실종되고. 여성으로서 살기는 왜 이렇게 힘든가. 그렇다고 내가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니 ‘나는 간신히 오늘도 살아남았다’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쉴 수밖에. 그런데 남성들은 그 공포를,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좀처럼 체감하지 못한다. 이 말은 남성들이 여성들이 놓인 위험한 현실에 문제를 못 느낀다거나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내 어머니나 딸에게 저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당신 누이라고 생각해 봐라’와 같이 여성을 매개로 공감하고 이해한다. 물론 공감을 억지로 이끌어낼 수는 없는 일이니 비난할 수는 없고 그저 ‘당신들은 정말 그런 면에서 운 좋구나’라는 부러움 아닌 부러움이 든다. 여성들의 위험은 이제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들 역시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 너무나 허술한 한국의 성폭력 범죄 처벌법과 널리 퍼진 안전 불감증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갈 때 해답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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