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국내에서 출시된 테슬라 모델 와이(Y). 테슬라코리아 누리집 갈무리
지난 6월 테슬라 모델 와이(Y) 후륜구동(RWD)의 국내 출시가 화제였다. 중국에서 생산하는데다 배터리를 리튬이온에서 리튬인산철(LFP) 소재로 바꾸며 판매가격이 기존보다 2천만원 내린 5699만원이었다. 국내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5700만원)을 밑도는 수준에 중앙정부 국고보조금(최대 680만원), 지방정부 보조금까지 합치면 실 구매가격이 4천만원대 중반(서울 기준)이 될 거라는 추측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앙정부 보조금은 514만원으로 책정됐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 충전 네트워크, 정비소 운영 여부 등을 복합적으로 심사해 결정하는데 최대 금액보다 166만원 적은 액수였다. 서울의 경우 134만원이 지원돼 보조금 총액은 650만원이 됐다. 주변 테슬라 소유자의 소개로 새 차를 주문해 추가 할인을 받는다고 해도 모델 와이 후륜구동의 가격은 4천만원대 중반대까지 떨어지진 않는다. 테슬라 주문을 권유한 이가 앱을 통해 구매 예약한 사람들의 취소 여부를 알 수 있는데 보조금 총액이 결정된 뒤 상당수가 예약을 취소했다고 한다. 실제 출고 시기가 다가오면서 기대만큼 가격이 저렴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전기차 구매 희망자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자료를 보면, 2022년 1~6월 신규 등록 전기차는
6만8996대로 전년 같은 기간(3만9273대) 대비 75.3%가 늘었지만 올해 같은 기간 신규 등록은 7만8466대(13.7% 증가)로 상승세가 주춤했다.
그래도 전기차 가격이 떨어지면 언제든 판매세는 회복될 수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 인사이트의 2023 글로벌 자동차 소비자 조사를 보면, 다음 차로 전기차를 선택하려는 이유 중 낮은 연료 비용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압도적 1위에 올랐다. 국내의 경우 정부 인센티브와 보조금 등이 2위에 올랐는데, 이는 차 구매와 보유 시점을 통틀어 비용 절감이 전기차의 가장 큰 매력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전기차의 가격은 어떻게, 언제쯤 내려갈까?
먼저 전기차가 비싼 이유부터 알아보자. 차 값의 약 4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와 모터, 전기 제어 장치 등 가격이 아직 높은 것이 첫번째다. 특히 배터리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에너지 저장장치(ESS) 등 여러 부문에서 수요가 급증하며 가격이 올랐다. 1㎾h(킬로와트시)당 배터리 가격은 2017년 209달러에서 2021년 141달러까지 떨어졌으나, 2022년 상승세로 돌아선 뒤 올해는 152달러로 전망된다.(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 보고서) 배터리 가격 상승은 실제로 2022년 전기차의 주된 가격 인상 요인이기도 했다.
그나마 올해 들어 배터리의 주요 원재료인 리튬의 가격이 떨어진 건 긍정적이다. 한국광해광업공단 통계를 보면, 2020년 8월 ㎏당 34위안에 불과했던 리튬 가격은 2022년 11월 무려 581위안까지 올랐다가 최근엔 200위안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물론 아직 과거처럼 배터리 값이 내려가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평이 많다. 그럼에도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리튬의 비중이 적은 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사용이 늘면서 전기차 가격 하락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 희망이 보인다.
전용 플랫폼도 전기차 가격을 떠받치고 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단순히 차의 뼈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배터리와 모터 등 여러 장치를 망라하는 전기전장 시스템을 포함한다. 이는 진화된 전기차 모델인 소프트웨어 기반 자동차(SDV, Software Defined Vehicle)의 바탕이 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자동으로 업데이트 되는 것처럼 자동차 운영 체계도 무선으로 업데이트가 가능해진다. 운영 체계 버전 변경으로 스마트폰 배터리 사용 시간이 늘어나는데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에스디브이에는 최신 반도체가 필요해 그만큼 가격이 비싸진다. 특히 내연기관차와 플랫폼을 공유하지 않는 전용 전기차에는 반도체가 많이 필요해 지난해 반도체 대란을 겪으며 가격이 크게 올랐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롱레인지 2더블유디(WD) 모델은 2021년 4980만원이었는데 2023년 6월 5410만원이 됐다. 반도체 대란과 배터리 가격 상승이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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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기차는 개발·설계·생산 비용도 높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설계와 제작 과정의 노하우로 원가를 낮출 수 있으나 전용 전기차는 아직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판매량이 많지 않아 대량 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힘든 것도 원인이다. 실제 이번 테슬라 모델 와이 후륜구동의 파격적인 가격인하는 그동안 테슬라의 제작·대량생산 기술 발전 덕분이다. 테슬라는 2017년 모델3을 내놓은 뒤 최근까지, 여러 차체 부품을 묶어 하나로 찍어내는 기가 프레스 등 다양한 전용 생산 방식을 도입하며 가격을 낮췄다. 이를 보면 전용 전기차
가격 인하에는 적어도 5년 이상의 생산 경험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테슬라 가격 인하는 특유의 판매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기존 자동차 회사처럼 오프라인 매장과 판매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아닌, 온라인 구매 및 직접 판매 등을 통해 얻었던 높은 마진율을 어느정도 포기했기에 가능했다. 이는 떨어진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다른 회사에 당장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전기차 가격 인하가 가까운 시기에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적어도 대량생산 노하우를 쌓은 2025년 이후에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조차 내연기관차와 가격 차이가 적은 중대형급 전기차부터 시작해 소형차는 몇 년 더 미뤄질 수 있다. 또 배터리 기술 발전으로 신제품이 나오더라도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무게를 줄이는 등 새로운 기술이 추가되면 되레 가격을 올릴 수도 있어 간단히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일이다.
전기차가 충전 중이거나 충전을 기다리고 있는 한 고속도로 충전소의 모습. 이동희 제공
현재의 전기차 판매 점유율 하락은 보조금 감소와 함께 가격 인상에 대한 시장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실제 타본 사람들이 경험한, 충전에 대한 불편함 등이 알려진 결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전기차 판매는 당분간 조정 기간을 거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반대로 값이 떨어지는 데 적어도 3~5년이 걸린다고 생각하면 보조금이 가장 많은 지금이 차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싸게 사는 게 최선은 아니다. 용도에 맞지 않는다면 괜한 소비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충전소 이용이 쉽고 연간 2만㎞ 이상 달리며 차를 오래 보유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전기차를 사도 잘 쓸 수 있다.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생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여러 수입차 브랜드에서 상품기획, 교육, 영업을 했다. 모든 종류의 자동차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다양한 글을 쓰고, 자동차 관련 교육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