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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재밌었냐?”
건조하게 물었습니다. 주저 없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응~.” 그것만으론 부족했습니다. “<트랜스포머>보다도 더?” 아이는 잠시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뭐, 비슷했어.”
며칠 전 <디워>를 보았습니다. 초등학생인 꼬마의 요청에 응한 것이었습니다. 나도 이참에 봐둬야겠다는 계산도 있었습니다. 하도 말들이 많고 시끄러워 그랬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제 반응은, 꼬마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괜찮기만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는 가족 오락영화로서, 관람료가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상상력의 수준을 따지자면 <트랜스포머>보다는 한 수 아래로 보였습니다. 괴물들의 캐릭터나 패션도 조금은 상투적인 게 흠이었습니다. 게다가 스토리는 무진장 유치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와 비교해 더 유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둘이 막상막하였습니다. “오락영화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영화가 끝난 뒤 자막으로 나오는 ‘감독의 말’도 질색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남우세스럽긴 해도, 역겹지는 않았으니까요. 애국주의 마케팅도 뒤틀린 쇼비니즘을 조장하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평론가들이 너무 정색하고 영화의 서사와 완성도를 따진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역설적으로 <디워> 흥행에 도움을 준 셈이지만요.
차라리 전국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디워> 감상 설문조사를 하는 건 어떨까요? 이건 놀이공원에서 새로 들여놓은 기구를 태워준 다음에 아이들에게 소감 조사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 놀이기구가 안전하고 스릴 만점이라면 좋은 거지요. 이른바 ‘심빠’들의 악플 전쟁이 있었지만, 어리고 철없는 관객들의 장난으로 치부하고 잘 타이르면 됩니다. <디워>를 놀이기구의 하나로 여깁시다. (‘놀이공원 커버스토리’ 마감 끝물에 부산 이동식 놀이공원에서 큰 사고가 나 당혹스러웠습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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