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금 기자의 생생 남아공 /
“아침 먹구요, 그리고 자구요. 점심 먹구요, 오후에 운동하구요. 저녁 먹구요, 마사지 받구요. 그리고 잡니다.”
박지성 어록에 남을 만한 이 짧은 답변은 스페인과의 평가전 전날인 3일(한국시각)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 경기장 프레스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박지성 선수의 일상은 어떨까’라는 독자의 호기심을 대신해 하루 일과를 물었는데, 답은 단순함을 넘어 자동응답기 소리처럼 딱딱했다.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허정무 감독도 “저녁 먹구요”라는 대목부터는 웃음을 참지 못했는데, 박지성조차 미안했던지 나중에 파안대소를 해 질문자의 무안함을 덜어주었다. 다시 “책을 본다든가, 음악을 듣는다거나, 아니면 인터넷을 한다든가…”라고 구체적 사례를 들어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질문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박지성은 개인적인 관계로 만나면 농담도 잘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사람이 확 달라진다. 그것은 마치 ‘경기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싶다. 그 외 모든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라는 마음가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장명자씨는 아들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남들 미팅하고 놀 때 놀지도 못하고…”라며 복받치는 눈물을 참지 못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들은 세속의 즐거움보다는 수도승 같은 고행의 길을 걸으면서 강해졌고, 자기만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완성한 듯이 보인다.
오른쪽 허벅지 안쪽에 약간의 통증을 느꼈던 박지성은 6일부터 팀 훈련을 100% 소화했다. ‘캡틴’ 박지성의 완전한 몸 상태에 허정무 감독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말수는 적지만 은근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박지성의 존재감은 팀을 핵융합시킨다. 세계적인 명문클럽에서 뛰는 박지성의 말에는 권위가 있다. “주눅 들지 말고 우리의 경기력을 보여주자”고 할 때 선수단 전체의 사기는 올라간다. 선배인 이영표나 허정무 감독은 박지성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질문을 받으면 먼저 나서서 보호해주는데, 그만큼 박지성의 팀내 위치는 바위처럼 단단하다.
박지성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 출정식에서 “누군가 (16강) 자신 있느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전 특별한 선수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특별하다. 골 기회가 났을 때 박지성과 같은 스피드로 공간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대표팀내 선수가 있다면 아마 박주영이 유일할 것이다. 그 스피드와 집요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이 생존하는 비법이다.
최근 나온 자서전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린다>에서 박지성은 남들 다 가는 길을 따라가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을 낮추며 누구도 가지 않으려는 공간을 찾아 달리고, 꿈을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희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박지성은 평발과 왜소함, 기술적인 한계라는 악조건을 딛고 한국 축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남아공 월드컵 한국 팀 첫 골의 주인공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비호처럼 날래게 멋진 골을 터뜨린 뒤 ‘업’(up)돼서 인터뷰하는 박지성을 보고 싶다.
루스텐버그/kimck@hani.co.kr
루스텐버그/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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