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신화를 창조했던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다시 등장한 북한이 ‘죽음의 G조’에서 2패를 당하며 살아남지 못했다. ‘또다시 1966년처럼, 조선아 이겨라!’라는 구호를 선수단 버스에 내걸고 의욕을 보인 그들이었지만, 브라질, 포르투갈 등 세계적 강호들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북이 함께 16강에 오르는 ‘두 코리아 돌풍’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매우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승후보 브라질과 1-2를 기록해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포르투갈에 무려 0-7 참패를 당함으로써 북한 축구는 그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다. 김정훈(59) 감독은 조별리그에 앞서 “우리들만의 기술이 있다”며 “2라운드 진출이 목표”라고 강한 의욕을 보였다. 간판 스트라이커 정대세도 “브라질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특유의 기술축구 대신 강한 정신력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말았다.
국제무대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던 북한 축구가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으리라고 본 전문가는 없었다. 전술이나 국제 경험 등 많은 면에서 낙후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구사한 5-4-1(또는 5-3-2) 전형은 현대 축구 흐름에 뒤떨어지는 것이다. 수비에 중점을 둔 전략으로 현대 축구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 북한은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도 자신들의 불리함을 인식한 듯 수비 위주 전술로 나섰다. 강한 정신력과 조직력만을 앞세운 전략도 구태의연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포르투갈과의 2차전에서 전반 초반에는 대등한 경기를 펼치다 후반 일거에 무너진 것은, 너무 의욕만 앞섰을 뿐 체력 안배, 공격 완급 조절 등 전체 경기 흐름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제대회 경험 부족은 문지기 리명국에게서 잘 드러난다. 정대세가 브라질과의 경기 뒤 “우리 식으로 경기를 잘 펼쳤는데, 문지기 실수 때문에 졌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물론 북한은 일본과 러시아에서 활약중인 정대세(가와사키), 안영학(오미야), 홍영조(FK로스토프)와 국내파 문인국, 박남철 등이 조화를 잘 이뤄 매서운 공격력을 보여주며 가능성도 확인했다. 그러나 북한 축구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폐쇄적인 그들만의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 축구의 흐름에 맞춰 변신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았다.
더반/kkm100@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