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프로농구 창원 엘지(LG) 이영환 단장의 수첩은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하다. 그 나름대로 정리한 프로농구단 단장의 역할이 담겨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른바 ‘트라이앵글론’. 삼각형을 그려놓고 꼭지점에 선수, 코칭스태프, 프런트라고 써 놓았다. 그는 “3자가 서로 협력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단장이 잘 조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코칭스태프나 프런트가 스타선수에게 끌려가서도 안되고, 감독이 너무 강해 선수들이 기를 펴지 못해도 안되고, 프런트가 선수단 지원을 소홀히 해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 단장은 농구단에 오기 전 영업파트에서 잔뼈가 굵었다. 항상 웃는 낯과 푸근한 성격으로 처음 만난 사람도 술 한잔하고 나면 금새 형님-동생 사이로 만든다. 그는 지난해 6월 엘지 단장에 취임한 뒤 특유의 인화력으로 선수단을 이끌고 있다. 한가위 연휴 때도 틈만 나면 체육관을 찾아 훈련 중인 선수들을 격려했다. 지난해 심판 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퍼비스 파스코가 떠날 때 그를 마지막까지 감싸고 위로한 사람도 그였다. 갑자기 정리해고된 선수도 그냥 내치는 법이 없다. 식사라도 함께 하며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됐다가 은퇴한 선수가 농구교실을 열자, 흔쾌히 후원해 준 일도 있었다.
여자프로농구 구리 금호생명 안진태 단장의 별명은 백삼섭이다. 외모가 탤런트 백일섭씨와 너무 흡사해 붙여진 별명이다. 나이로 따지면 백씨의 둘째동생쯤 된다고 해서 백이섭이 아니라 백삼섭이다. 얼굴에서 풍기듯 그 역시 푸근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그는 올해초 단장으로 취임한 뒤 ‘단장은 뭘해야 하는지’ 여러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어느 농구담당 기자에게서 답을 얻었다. 단장은 선수들 숙소에 만화책이나 넣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선수단에 간섭하지 말고 선수를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안 단장은 지난 3월 이상윤 감독을 새로 선임한 뒤 만나는 사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 감독을 칭찬하고 다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언론 노출을 꺼린다. 대신 몸으로 실천한다. 지난 5월 선수단 해병대 극기훈련 때 앞장서서 참여했다. 흙먼지를 마시며 유격훈련을 했고, 차디찬 갯펄에서 뒹굴렀다. 주위에서 “이러다 큰일난다”고 만류했지만 그는 되레 사람 좋은 미소로 선수단을 다독였다. 감독이나 스타선수처럼 눈에 띄진 않지만 팀을 이끄는 소금같은 존재가 바로 단장인가 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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