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미국프로야구에서 밤비노의 저주란 말이 있다. 1918년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보스턴 레드삭스가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헐값(12만5천달러)에 판 뒤 86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보스턴은 이 기간 동안 4차례나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쓴잔을 마셨다. 반면 양키스는 루스 영입 이후 26차례나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며 명문 구단이 됐다.
국내 프로농구에서는 서장훈의 저주라는 게 있다. 서울 에스케이(SK)는 서장훈의 활약으로 1999~2000 시즌 우승, 2001~2002 시즌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서장훈이 서울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뒤 5년 동안 우승은 커녕 플레이오프조차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또 묘하게도 서장훈이 달았던 11번을 이어받은 스타급 선수들은 두 시즌을 넘기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김영만 조성원 홍사붕 조상현이 모두 그랬다. 에스케이에서 11번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모기업 이동통신번호 011을 뜻하기 때문. 그런데도 11번은 선수들 사이에서 기피대상 등번호가 됐다. 방성윤은 신인이던 2005~2006 시즌 11번을 달았지만 지난 시즌엔 7번으로 바꿨다. 11번을 달고 뛰었을 때 부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스케이는 이번 시즌 ‘코트의 신사’ 김진 감독을 새 사령탑에 앉혔다. 김 감독은 대구 오리온스 감독 시절 팀을 6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은 ‘6강 제조기’다. 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 감독이 된 2001~2002 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놓은 뒤 한번도 ‘봄 잔치’에 못 나간 적이 없다.
에스케이에 ‘길조’는 또 있다. 강동희(1966년생)-이상민(1972년생)-김승현(1978년생)으로 이어지는 한국농구 포인트가드 ‘6년 주기설’의 적임자로 새내기 김태술(1984년생)이 거론되고 있다. 그는 8일 시범경기에서 삼성을 상대로 20득점 5도움주기를 기록하며 멋진 신고식을 치렀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2004년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르며 86년 만에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에서 빠져나왔다. 에스케이가 새얼굴 김진 감독과 김태술을 앞세워 ‘서장훈의 저주’에서 벗어날 지 궁금하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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