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1990년대 말, 선동열·이종범·이상훈이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할 때 얘기다. 유니폼 뒤에 이름을 어떻게 새길 것이냐를 두고 구단과 당사자가 머리를 맞댔다. 가장 먼저 일본에 진출한 선동열은 영문 성을 따 선(SUN)이라고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이름대로 그는 ‘나고야의 태양’이라는 멋진 별명까지 얻었다. 이종범은 제이리(J.LEE)라는 그럴싸한 애칭을 택했다. 톰과 제리의 제리처럼 빠르고 영리한 플레이 스타일에 영문 이름 머릿글자를 절묘하게 결합했다. 이상훈은 자신의 별명 삼손(SAMSON)을 택했다. 발음이 이름 ‘상훈’과 비슷한데다 ‘갈기머리’ 이미지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애칭 단 유니폼은 국내 프로무대에서도 이따금 볼 수 있다. 주로 이름이 긴 브라질 등 라틴계 선수들이다. 프로축구 경남의 뽀뽀는 ‘아딜손 페레이라 데 포포 소우자’라는 이름에서 ‘포포’를 따 뽀뽀라고 지었다. 같은 팀 까보레의 본명은 ‘에베라우도 데 제수스 페헤이라’. 그는 아버지가 지어준 별명 ‘곰’이란 뜻의 ‘까보레’를 쓰고 있다. 프로배구 대한항공 보비는 본명 파지오 호비손 따데오 대신 별명 밥(Bob)에서 유니폼 이름을 따왔다.
우리 선수들은 아직 경기장에서 별명이나 애칭 달린 유니폼을 입은 적이 없다. 다만 프로야구 SK 선수들이 주말 홈경기 때 이름 대신 ‘팬사랑’이라고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뛴다. 또 팬들은 관중석에서 엘지 박용택의 ‘쿨가이’, 봉중근의 ‘닥터 봉’, 두산 다니엘 리오스의 ‘이오수’ 따위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거나 걸어두고 응원한다.
그런데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프로농구 선수들이 애칭이나 별명 달린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선다. 한국농구연맹(KBL)은 유니폼 규정을 바꿔 홈경기 때 사전 승인을 얻으면 가능하도록 했다. 이미 프로농구 서울 SK는 시범경기에서 람보슈터(문경은) Mr.빅뱅(방성윤) 매직키드(김태술) 등 별명 단 유니폼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프로야구도 총재의 사전 승인을 얻으면 별명 달린 유니폼 착용이 가능하고, 프로축구나 프로배구도 이같은 유니폼을 입지 말라는 규정은 없다. 맘만 먹으면 다른 종목도 가능하다. 어쨌든 프로농구 선수들은 등번호 외에 자신의 홍보수단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이에 따라 올 시즌엔 농구코트를 찾는 팬들의 눈도 더 즐거워질 것 같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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