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있는 날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펜싱 사브르 구본길. 항저우/연합뉴스
온 우주의 티끌 하나라도 모아서 이기고 싶은 게 스포츠 선수들의 마음이다. 징크스도 그래서 생긴다. 해서 안 좋았다면 하지 않고, 해서 좋았다면 계속하게 된다. 선수들이 “평소 루틴대로 하겠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같다.
태권도 남자 품새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긴 강완진은 경기 전 “딱 30분 동안 반신욕을 한다.” 또한 경기 전날에는 밤 12시30분~1시 사이에 잠 들어 아침 6시~6시30분에 일어난다. 밤 12시30분 전에는 피곤해도 절대 자지 않는다. 여자 품새 금메달을 목에 건 차예은 또한 징크스가 있다. 학창 시절부터 먹었던 에너지 음료를 꼭 먹어야 한다. 유도 남자 81㎏ 은메달리스트 이준환도 비슷한데, 항상 복숭아 아이스티를 챙겨 가서 경기 당일에 무조건 마신다.
한국 선수끼리 맞붙었던 펜싱 결승전에서 ‘패자’가 된 이들은 정반대의 루틴이 있다. 에페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딴 송세라(부산광역시청)는 경기 전 아침 식사로 핫앤쿡(발열 도시락) 한 봉지를 꼭 먹는다. 하지만 사브르 개인전에서 오상욱(대전광역시청)에 패한 구본길(국민체육진흥공단)은 시합 당일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브레이킹의 전지예의 경우는 대회 일주일 전부터 탄수화물을 거의 끊고 전날이나 사흘 전부터 섭취하는 루틴이 있다.
근대5종에서 아깝게 금메달을 놓치고 눈물을 펑펑 쏟은 김선우나 펜싱 사브르 최세빈은 경기 전 꼭 손톱을 깎는다. 브리지(카드 게임) 이수익도 대회 전 손톱을 짧게 자른다. 26일 은메달을 목에 건 럭비 대표팀의 이진규는 “면도를 하고 간 날에는 경기가 잘 풀려서” 시합 당일 면도를 하는 루틴이 있다. 반면 남자 도로 사이클의 장경구는 경기 하루 전에는 절대 수염을 밀지 않는다. 철인 3종의 김지환 또한 경기 1주일 전부터는 손톱을 다듬거나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 그는 “꼭 경기 1시간30분 전에 숙소에서 출발”하는 습관도 있다.
숫자 ‘4’를 싫어하는 것은 일반인과 똑같다. 양궁 리커브 김우진은 “숫자 4를 싫어해서 시합 전에 되도록 4를 안 쓴다”면서 “과거 시합 전에 빵을 먹었다가 0점을 쏜 기억이 있어서 빵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전통 무술 쿠라시 종목에 나서는 이예주 또한 시합 전 숫자 4를 보는 것을 피한다.
다이빙 우하람이나 농구 문정현은 경기 전 주변 물건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사이클 나아름 또한 경기 전 주변을 정리하며 집중력을 높인다. 핸드볼 강은혜 또한 “물건을 평소보다 더 가지런히 정리한 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경기장으로 간다. 카바디 조현아는 “평소에는 성격상 정리정돈을 잘 못 하지만 시합 전날에는 꼭 유니폼을 반듯하게 개서 머리맡에 두고 잔다”고 한다. 세팍타크로 전규미는 시합 전에 긍정적인 내용이 담긴 책을 읽는다.
하키 천은비는 양말과 신발을 반드시 왼쪽부터 신는다. 축구 엄원상도 스타킹을 왼쪽부터 신는다. 아티스틱스위밍의 이리영은 렌즈를 왼쪽부터 끼는 것이 습관이 돼 있다.
펜싱 사브르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노리는 김준호는 징크스를 깨려다가 다른 징크스를 만든 케이스다. 경기 전 사진을 찍으면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 징크스였는데, 이를 깨기 위해 사진을 찍고 경기에 들어가다가 결국 지금은 사진을 찍는 게 루틴이 됐다.
“징크스가 있으면 괜히 의식하게 돼 되도록 만들지 않는다”는 박지수(여자농구)의 말처럼 선수들은 징크스를 안 만들려고 한다. 심리적 불안감을 단 한 톨이라도 없애기 위함이다. 스포츠는 피지컬 싸움이자 멘털 싸움이기 때문이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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