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온 고려인 어린이·청소년들이 13일 광주 고려인마을 청소년문화센터에서 한국어교육을 받고 있다. 광주고려인마을 제공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안도감보다는 낯섦과 두려움이 앞섰어요. 다행히 많은 분이 도와줘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어요.”
우크라이나에 살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지난달 30일 광주로 온 고려인(일제강점기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한민족의 후예) 문나탈리아(40·여)씨는 1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 2주간의 한국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살고 있던 미콜라이우에 러시아군의 폭격이 집중되자 급한 마음에 겨울옷만 간신히 챙겨 부모, 남편과 함께 루마니아로 피신했다는 문씨는, 오빠와 남동생이 일하고 있던 한국으로 오려 했지만 손에 쥔 현금이 없었다. 이때 ㈔광주고려인마을(고려인마을)에서 항공권을 보내줬고, 오빠 등이 있는 광주까지 올 수 있었다.
문씨는 “광주에 와서는 시민 성금으로 원룸 보증금과 두달치 월세를 마련할 수 있었다”며 “그릇과 이불 등 간단한 살림살이까지 챙겨줘 당장 생활하는 데 불편한 점은 없다. 마냥 다른 사람 도움에 기댈 수 없어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고려인 동포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 광주 광산구 월곡동에 고려인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된 고려인마을은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를 탈출하거나 탈출하려는 고려인들을 돕고 있다. 지난달 10일 학업 문제로 우크라이나에 홀로 남아 있던 최마르크(13)군 피신을 돕기 위한 후원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최군을 시작으로 한국을 찾게 된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곳곳에서 성금이 들어오고 있다. 광주와이엠시에이(YMCA) 등 시민단체나 종교단체도 있었지만 대부분 개인이었다. 200여명이 1만~30만원씩 기부해, 이달 12일까지 모인 성금이 어느새 1억2828만원에 달했다. 쌀이나 라면, 배추, 이불 등 생필품, 밥솥과 옷 같은 물품을 전달해온 시민들도 있었다. 광주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무료 의료지원에 나섰다.
고려인마을은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13일까지 11차례에 걸쳐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 79명이 한국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왔다. 14~18일에도 28명이 고려인마을 도움을 받아 폴란드, 몰도바, 독일 등에서 한국행 채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법무부도 우크라이나 고려인 귀환을 돕기 위해 입국절차를 간소화했고, 이광재·이용빈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들이 무국적자이거나 가족증명서가 없는 경우에도 일단 입국시킨 뒤 관련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재외동포법 개정에 나섰다.
고려인마을은 갑작스레 낯선 환경에 직면한 고려인 어린이·청소년(15명)들을 위해 한국어 교육 등 한국 사회 적응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청소년문화센터와 지역아동센터, 어린이집 등을 활용해 이들을 돌보는 한편, 초·중·고교 입학 절차를 안내하고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많은 시민의 도움으로 고려인 동포가 모국으로 올 수 있었다. 동포들이 낯선 조상의 땅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후원 문의는 광주고려인마을(062-961-1925).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