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연습장 (21)
놀부네 곳간이 다 차지 않았어도
│ 가득하다:그득하다 [오늘의 연습문제] 괄호 안의 두 낱말 중에서 더 자연스러운 것을 고르시오. [손님이 호프집 주인에게] “이 잔을 (가득|그득) 채우면 정말로 500cc가 되나요?” [놀부가, 너른 곳간을 반 넘어 채운 나락 가마니들을 바라보며] “인자 광에 벼섬도 (가득허겄다|그득허겄다), 흥부놈만 날파리마냥 달라붙지 않으면 올 겨울도 두 다리 뻗고 지내겄구먼.”
[풀이] 국어사전들은 하나같이 ‘그득하다’를 ‘가득하다’의 “큰말”로 규정하고 있다. 큰말이란 “뜻은 같으면서 어떤 모음이 쓰였느냐에 따라 어감이 크고 어두우면서 무겁게 느껴지는 말”이다. 그러나 ‘가득하다’와 ‘그득하다’를 큰말-작은말의 관계로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 두 낱말의 “뜻”이 결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술집 주인이 맥주를 8부 정도만 채운 500cc 잔을 내밀면서 “가득 채웠습니다!” 한다면 손님은 당연히 항의를 할 수 있다. 왜 다 채우지도 않았으면서 ‘가득’ 채웠다 하느냐고. 그런데 만약 주인이 “그득 채웠습니다!” 했다면 상황이 사뭇 달라진다. 손님으로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딱히 주인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곳간을 빼곡하게 채우지 못했음에도 놀부가 “벼섬이 그득하다”며 배를 두드릴 수 있었던 까닭도 마찬가지다. ‘가득하다’는 말 그대로 어떤 것이 공간을 가득(!) 채웠을 때 쓸 수 있는 말이고, ‘그득하다’는 다 채우지 못했더라도 그 양이 많다는 느낌만 있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서가에 책이 가득하다”는 실제로 책이 거의 빈 데 없이 들어차 있다는 뜻이고, “식품매장에 과일이 그득하다”는 그 종류나 양이 상당히 많다는 말이다. “욕조에 물이 가득하다”는 물이 넘치기 직전이라는 말이고, “욕조에 물이 그득하다”는 목욕물의 양이 꽤 많다는 뜻이다. ‘가득하다’는 고체, 액체, 기체에 두루 쓰이는 데 비해 ‘그득하다’는 기체나 냄새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방에 악취가 가득하다”는 자연스럽지만 “방에 악취가 그득하다”는 매우 어색하게 들린다. 기체나 냄새는 공간을 남김없이 채우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가득’은 ‘차다’와 쉽게 어울린다. ‘가득차다’를 아예 표제어로 대접하는 사전도 있다. 이에 반해 “그득 차다” “그득 찬” 같은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점을 생각하면 ‘가득하다’에 담긴 ‘충만’의 의미가 한층 또렷해진다. [요약] 가득하다: 어떤 공간이 무언가로 꽉 차 있는 상태를 묘사|내용물의 수량보다는 공간의 포화 상태가 초점|고체, 액체, 기체에 두루 쓰임. 그득하다: 어떤 공간에 들어 있는 사물의 수량이 많다는 느낌을 표현|공간의 포화 여부는 중요하지 않으며, 내용물의 수량이 초점|기체나 냄새에는 쓰이지 않음. [답] 가득, 그득허겄다 김철호(번역가/도서출판 유토피아 대표)
│ 가득하다:그득하다 [오늘의 연습문제] 괄호 안의 두 낱말 중에서 더 자연스러운 것을 고르시오. [손님이 호프집 주인에게] “이 잔을 (가득|그득) 채우면 정말로 500cc가 되나요?” [놀부가, 너른 곳간을 반 넘어 채운 나락 가마니들을 바라보며] “인자 광에 벼섬도 (가득허겄다|그득허겄다), 흥부놈만 날파리마냥 달라붙지 않으면 올 겨울도 두 다리 뻗고 지내겄구먼.”
[풀이] 국어사전들은 하나같이 ‘그득하다’를 ‘가득하다’의 “큰말”로 규정하고 있다. 큰말이란 “뜻은 같으면서 어떤 모음이 쓰였느냐에 따라 어감이 크고 어두우면서 무겁게 느껴지는 말”이다. 그러나 ‘가득하다’와 ‘그득하다’를 큰말-작은말의 관계로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 두 낱말의 “뜻”이 결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술집 주인이 맥주를 8부 정도만 채운 500cc 잔을 내밀면서 “가득 채웠습니다!” 한다면 손님은 당연히 항의를 할 수 있다. 왜 다 채우지도 않았으면서 ‘가득’ 채웠다 하느냐고. 그런데 만약 주인이 “그득 채웠습니다!” 했다면 상황이 사뭇 달라진다. 손님으로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딱히 주인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곳간을 빼곡하게 채우지 못했음에도 놀부가 “벼섬이 그득하다”며 배를 두드릴 수 있었던 까닭도 마찬가지다. ‘가득하다’는 말 그대로 어떤 것이 공간을 가득(!) 채웠을 때 쓸 수 있는 말이고, ‘그득하다’는 다 채우지 못했더라도 그 양이 많다는 느낌만 있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서가에 책이 가득하다”는 실제로 책이 거의 빈 데 없이 들어차 있다는 뜻이고, “식품매장에 과일이 그득하다”는 그 종류나 양이 상당히 많다는 말이다. “욕조에 물이 가득하다”는 물이 넘치기 직전이라는 말이고, “욕조에 물이 그득하다”는 목욕물의 양이 꽤 많다는 뜻이다. ‘가득하다’는 고체, 액체, 기체에 두루 쓰이는 데 비해 ‘그득하다’는 기체나 냄새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방에 악취가 가득하다”는 자연스럽지만 “방에 악취가 그득하다”는 매우 어색하게 들린다. 기체나 냄새는 공간을 남김없이 채우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가득’은 ‘차다’와 쉽게 어울린다. ‘가득차다’를 아예 표제어로 대접하는 사전도 있다. 이에 반해 “그득 차다” “그득 찬” 같은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점을 생각하면 ‘가득하다’에 담긴 ‘충만’의 의미가 한층 또렷해진다. [요약] 가득하다: 어떤 공간이 무언가로 꽉 차 있는 상태를 묘사|내용물의 수량보다는 공간의 포화 상태가 초점|고체, 액체, 기체에 두루 쓰임. 그득하다: 어떤 공간에 들어 있는 사물의 수량이 많다는 느낌을 표현|공간의 포화 여부는 중요하지 않으며, 내용물의 수량이 초점|기체나 냄새에는 쓰이지 않음. [답] 가득, 그득허겄다 김철호(번역가/도서출판 유토피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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