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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소년의 쓸쓸함 달래준 ‘사진 한 장’

등록 2008-03-14 19:35

〈사진이 말해 주는 것들〉
〈사진이 말해 주는 것들〉
읽어보아요 /

〈사진이 말해 주는 것들〉
퍼트리샤 매클래클런 지음·박수현 옮김.오승민 그림/문학과지성사·8500원

엄마가 떠나 버렸다. 칼미아가 환한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의 어느 봄날, 엄마는 아무런 설명 없이 가방을 쌌다. 기억의 망막에 새겨진 마지막 장면은 문가에 서 있던 엄마의 머릿결 사이로 흩어지던 햇살뿐. 저니가 열한 살 되던 해의 일이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 가운데 누구도 엄마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할머니와 누나는 텃밭 일에만 열중이고, 할아버지는 사진 찍는 일에 여념이 없다. 저마다 이런 식으로 쓸쓸함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가끔 돈을 조금 넣은 우편물이 오지만, 편지는 물론이고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사진이 말해 주는 것들〉은 두 겹의 이야기가 포개지면서 진행된다. 엄마가 집을 나간 봄부터 가을까지 이들 가족이 겪는 일들이 전면에서 다루어진다면, 저니가 일인칭 화자의 시선으로 사진과 관련된 기억의 회로를 더듬고 의미를 묻는 일이 그 속살을 이룬다.

저니네 가족사진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이들의 가족사진은 거실이 아니라 헛간의 벽에 걸려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년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인 아빠와 엄마가 빠져 있다. 사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쳐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사물의 인상을 붙잡아 둔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행복한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하고,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그토록 사진 작업에 매달린 것은 손자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자리에 따뜻한 기억을 담아 주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마침내 할아버지가 찾아낸 옛 사진의 원판에서 아빠와 엄마가 갓난아기인 저니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고 있다. 슬픔, 원망, 미움… 그리고 용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니는 깨닫는다. 언제나 원하는 사진만 가질 수는 없듯, 인생도 자신의 바람대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만히 소년을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다가와 손을 꼭 잡아 준다.

오석균/ 도서출판 산하 주간 mitba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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