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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도스토옙스키에게 돈은 창작 원동력이었다”

등록 2008-03-21 20:57수정 2008-03-21 21:02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펴낸 석영중 교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펴낸 석영중 교수
인터뷰 /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펴낸 석영중 교수

‘선불 인생’ 경험이 현실 읽는 코드로
대부분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뤄져
기존 형이상학적 분석에 균형 시도
“독자들 접근 쉽게 발랄하게 썼어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3000루블에 관한, 3000루블에 의한, 3000루블을 토대로 하는 소설이다. 번역본으로 1700쪽에 달하는 이 소설은 3000루블로 시작해서 3000루블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 3000루블에 관한 언급은 정확하게 191번이며, 그 외에 돈의 액수가 언급되는 것은 300번 정도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돈의 관계를 천착한 흥미로운 책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예담 펴냄)에서 지은이 석영중 교수(고려대 노어노문학과·사진)는 이렇게 단언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만이 아니라 도스토옙스키의 주요 작품들에서 돈은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책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 〈미성년〉 〈도박꾼〉 〈죄와 벌〉 〈백치〉 〈악령〉 등 그의 주요 장편들을 다루고 있는데, 〈악령〉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에서 “모든 등장인물은 돈으로 연결되며 돈을 통해 소통하고 돈 때문에 맺어진다.”

“도스토옙스키는 그 자신 평생을 돈 때문에 시달렸던 사람입니다. 출판업자들에게 선불 형식으로 진 빚을 갚느라 미친 듯이 원고를 써야 했죠. 그 때문인지 그의 소설 속에는 유난히 돈에 관한 언급이 많습니다. 단지 언급이 많을 뿐만 아니라 돈을 둘러싼 이런저런 관계와 사건이 소설의 핵심을 이루고 있어요. 그의 소설을 흔히 종교와 철학, 사상 같은 거창한 주제들로 해석하지만, 그 바탕에는 돈에 대한 작가의 유별난 집착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석 교수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러시아 현대시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에서는 전공인 현대시만이 아니라 도스토옙스키, 러시아 문학과 종교, 러시아 문학 기행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낸 도스토옙스키 전집 중 〈가난한 사람들〉과 〈백야〉의 번역을 맡았다. 〈러시아 시의 리듬〉 〈러시아 현대 시학〉 〈러시아 정교〉와 같은 저서도 낸 바 있다.


“이 책은 2006년 8월 연구년을 맞아 미국에 1년간 머물면서 썼습니다. 구상은 3~4년 전부터 했죠. 도스토옙스키를 일반 대중에게 쉽게 알릴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저 자신 학문적 글쓰기에 어느 순간 답답함을 느꼈고, 좀 더 자유롭게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글을 쓰는 동안 무척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즐겁게 책을 써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책은 매우 평이하고 친근하며 발랄한 어투로 씌어졌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전혀 안 읽은 독자라도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전혀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그는 장담했다.

책은 빠듯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일찍부터 낭비벽을 보인 도스토옙스키의 성장기를 서술한 다음, 데뷔작인 〈가난한 사람들〉에서부터 최후의 걸작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주요 작품을 쓰는 동안, 그리고 그 작품들 속에서, 돈이 어떤 작용과 구실을 했는지를 조근조근 설명해 준다. 제목에서부터 가난을 표방함으로써 “자신이 창조한 최초의 문학적 인물에다가 스스로의 미래를 투영해 놓”은 〈가난한 사람들〉, “도박꾼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소설화된” 〈도박꾼〉, “돈이 가장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 ‘범죄 소설’ 〈죄와 벌〉, 10만 루블 돈뭉치가 벽난로에 던져지는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삼은 〈백치〉 등에서 돈의 유무와 그 행방은 인물들의 성격과 위상을 결정하고 운명을 가른다.

이런 소설들을 쓰는 동안 그는 “선불을 받지 않고는 단 한 권의 책도 판 적이 없었다”고 할 만큼 ‘선불’이라는 이름의 빚에 쫓겼다. 그가 일종의 역할 모델로 삼았던 프랑스 작가 발자크가 그랬듯이, 도스토옙스키에게도 돈에 쪼들리는 나날은 창작의 위대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도박 빚을 갚기 위해 투르게네프에게 돈을 빌렸던 일이 원인이 되어 자신의 소설 〈악령〉에서 투르게네프로 짐작되는 소설가를 매우 역겹게 묘사한 일은 유명하다. 그렇지만 심리와 종교, 철학 등 매우 심오한 주제를 다룬 것으로 평가받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세계를 돈 놀음으로만 좁혀서 이해하는 것은 너무 부당한 노릇 아닐까?


도스토옙스키. 〈한겨레 자료사진〉
도스토옙스키. 〈한겨레 자료사진〉
“도스토옙스키에게 돈은 현실을 읽는 코드였습니다. 그는 돈이 지배하는 현실적인 관계를 그리는 한편 끊임없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다른 관계를 꿈꾸었죠. 바로 거기에서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형이상학이 비롯됩니다. 도스토옙스키에 관한 이제까지의 논의는 현실이 아닌 형이상학의 측면만을 부각시켜 왔어요. 저는 거꾸로 돈이라는 현실의 측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일종의 균형을 꾀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동안 도스토옙스키 문학을 돈의 관점에서 다룬 논문은 몇 편 있었지만, 적어도 러시아어와 영어로 된 단행본은 아직 보지 못했노라고 석 교수는 말했다. 러시아에서 도스토옙스키와 돈의 관계를 소설로 쓴 책은 나와 있단다.

“인간의 기본 가치는 19세기 러시아와 21세기 한국이 서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작가들은 시공의 경계를 넘어 같은 주제를 달리 표현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동일한 작품에 대한 해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문화란 변치 않는 가치와 변화의 역동성이 공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변치 않으면 썩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변화에만 매달리다가는 황폐해질 수 있어요. 책읽기는 그처럼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유용한 방법입니다.”

석 교수는 도스토옙스키 문학과 종교의 관계를 다룬 책, 그리고 러시아 문화사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쓴 책 등을 다음 작업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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