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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앎과 숨바꼭질하며 살아온 한평생”

등록 2008-04-11 19:52

인터뷰 / ‘공부도둑’ 펴낸 원로 교수 장화익
인터뷰 / ‘공부도둑’ 펴낸 원로 교수 장화익
인터뷰 / ‘공부도둑’ 펴낸 원로 교수 장화익

‘온생명’세우기까지 공부꾼 삶 그려
학문을 살아 움직이는 송아지 같아
동서양 학문 통합땐 ‘완전한 삶’도달

옛날이야기 하나. 여우하고 단짝인 꼬마가 있었다. 어느 날 꼬마가 여우랑 놀다가 그만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는데, 하얀 도복에 지팡이를 짚은 도인이 나타났다. “저기 동굴에서 이 책만 다 읽으면 도에 통달하게 된다.” 꼬마는 동굴에 들어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우가 놀자며 자꾸 조르는데도 꾹 참았다. 그렇게 몇 날을 끙끙거려 겨우 마지막 한 장이 남았는데, 꼬마는 그만 여우의 꾐에 못 이겨 책을 던지고 나와버렸다. 조금만 참았으면 세상이 달라졌을 텐데….

외삼촌한테 이 이야기를 듣던 또다른 꼬마는 땅바닥을 쳤다. ‘내가 그 꼬마였으면 쉽게 포기하지 않고 책을 다 읽어서 도에 통달할 수 있었을 텐데….’

장회익(70ㆍ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가 쓴 <공부도둑>(생각의나무ㆍ1만2000원)에서 “어쩌면 내 생애 전체가 이 동화의 재현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회상한다. “전 우주의 학문 보물창고에 들어가서 학문의 정수들만 다 골라 훔쳐내”는 ‘공부 도둑’의 길에, 안타깝게 문턱에서 고꾸라진 이 꼬마 이야기는 반면교사가 돼 평생을 따라다녔다.

<공부도둑>은 장 교수가 ‘온생명’이라는 독자적인 생명 개념체계를 세우기까지 밟아온 공부꾼 삶을 풀어놓은 책이다. 그를 ‘앎의 도둑’으로 이끈 아주 사소한 계기와 일화부터 독자적인 사상에 이른 앎의 경로까지 탈탈 털어놓았다.


꼬마 이야기가 ‘생명의 정수’라는 ‘도’를 향해 더욱 깊숙이 파고들도록 그를 끊임없이 채찍질했다면, 일찍이 터득한 야생 기질과 ‘송아지 사육론’ 학습법은 그의 손에 연장을 쥐여주고 시야를 터줬다. 손자의 공부를 극구 뜯어말린 할아버지 덕에 밭이 아닌 야생 환경에 뿌려진 삼의 씨는 맷집을 키워가며 산삼으로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2년 동안 제도권 교육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 아이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혼자 힘으로 깨쳤다. ‘케이자루’와 ‘가이사’, ‘카이사르’, ‘시저’가 모두 같은 인물이라는 걸 모르는 채로 혼자 책을 읽어나갔다. 자신이 아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어 답답했던 아이는 책을 노트에 무작정 베껴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지은이라면 책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생각하며 책을 다시 써보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명쾌하게 갈렸다. 어려서부터 ‘자기 안에 있는 스승’을 기르게 된 것이다. 나중에 그는 회상한다. “이 스승은 일생을 두고 나를 가르치고 있으며, 나 또한 일생을 두고 그에게 배우고 있다.”


〈공부 도둑〉
〈공부 도둑〉
‘송아지 사육론’은 ‘자동차 조립론’과 대비되는 학습법이다. 학문은 부품을 하나씩 마련한 뒤 조립하면 굴러가는 자동차 같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송아지와 같다는 것이다.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며 살아서 꿈틀거리는 어린 송아지에게 먹이를 주어야, 공부를 하며 하나의 생명을 키우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는 통합적인 이해의 바탕 위에 ‘삶의 의미’를 세우는 공부를 지향했다.

이렇듯 어떤 공부든 혼자 힘으로 본질을 터득하고 큰 틀에서 그 의미를 아우를 수 있어야 직성이 풀렸던 그는 물리학에서 철학으로, 다시 동양학으로 학문의 영토를 넓혀나갔다. 그는 “모든 학문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고 우리 자신은 누구라는 걸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구의 학문을 대인지식(인문학)과 대물지식(자연학)으로 나눌 수 있다면, 동양학문은 이 둘을 ‘대생지식’으로 통합한다고 설명한다. “서구학문의 구체성과 정확성을 동양학문의 직관적 이해로 통합하면 학문의 최종목표인 ‘완전한 삶’의 특권에 이를 수 있겠지요. 아직은 풀지 못한 숙제입니다.”

풀지 못한 숙제가 있으니 동굴에서 책을 읽던 꼬마는 다시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는 요즘 괴테의 <파우스트>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모든 사상을 <파우스트>라는 문학 작품에 담아낸 괴테처럼, 인문적인 틀에 자신이 깨친 세계의 지성사를 담아내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지적으로 축적해 온 내용이 무엇인지, 그걸 바탕으로 어떻게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지를 뽑아내 다시 우리 삶의 문제와 직결되는 틀에 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앞으로 다시 70년은 더 살아야겠지요?”

글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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