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입구. 연합뉴스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경색 사태는 재정 수백억원을 아끼려는 지방자치단체의 행동으로 정부가 수십조원의 비용을 청구서로 받게 된 초유의 사건이다. 급격한 금리·환율 상승으로 시장 전반의 변동성과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대처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원도가 레고랜드 개발 시행사의 기업 회생 절차 신청을 발표할 때 알았냐”는 질문에 “우리(금융위)와 협의한 건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며 “우리 대응이 부실하고 늦었다는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레고랜드 사태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지난달 28일 강원 춘천시 중도동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절차를 신청하겠다고 밝히며 촉발됐다. 시장에선 이를 강원도가 출자회사인 중도개발공사를 위해 보증을 서준 채무 2050억원을 갚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지자체가 빚보증을 선 신용도 높은 증권조차 채무 불이행에 빠졌다며 시장에 공포가 확산됐으나 이는 ‘강원도의 일’로 치부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디시(DC)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레고랜드 사태 대책을 묻자 “(이 문제는) 강원도에서 대응을 해야 할 거 같다”며 “(시장 전반으로 불안 심리가) 확산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강원도와 채권단의 책임 떠넘기기 공방은 거세지고 있었다. 강원도는 채무 2050억원의 만기를 내년 1월 말까지 연기했지만, 채무 연계 증권(ABCP) 발행을 주관한 비엔케이(BNK)투자증권은 정작 해당 증권을 발행한 페이퍼컴퍼니(아이원제일차)를 지난 4일 부도 처리했다. 강원도와 채권단이 갈등을 빚으면서 엇갈린 조처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김 지사가 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신청 발표 23일 만인 지난 21일 “강원도 예산으로 내년 1월29일까지 빚을 갚겠다”고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강원도 쪽은 회생 신청을 통해 레고랜드 개발에서 발생한 부채 수백억원을 줄이려 했다. 그러나 이 일로 정부는 지난 23일 채권시장에 ‘50조원+알파’ 규모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채권시장의 동요를 지켜보다가 호미(강원도의 결자해지)로 막을 것을 가래(50조원+알파)로 막는 꼴이 된 셈이다. 지방 재정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23일에야 보도자료를 펴내 “지자체가 채무를 보증한 사업의 추진 상황을 분기별로 점검하고 보증 채무 이행을 당부하겠다”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도 하나의 법인인 만큼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보증 채무 이행을 강제할 법령상의 권한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강원도가 이번 결정(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을 하기 전에 정부와 협의를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정부는 시장 안정 의지와 능력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섣불리 대처하면 오히려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할 수 있어 상황을 보다가 지난 23일 대책을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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