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의원들이 시정연설을 보이콧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치고 여당 의원들과 악수를 하며 퇴장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639조원 규모의 2023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오는 4일 공청회를 시작으로 본격화된다. 정부가 재정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한 ‘건전 재정’을 앞세우면서 대대적인 감세안을 낸 점, 반지하 주거대책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음에도 공공임대 주택 예산을 5조6천억원 삭감한 점 등이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국고 지원금이 전액 삭감된 지역사랑상품권의 효율성을 두고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정부는 △소득세 과세표준구간 조정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중과세율 폐지 등 각종 감세안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내년도 세입예산안 부수법안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국회법상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되면 해당 상임위는 법안을 11월30일까지 반드시 처리해야 하고, 심사를 끝내지 못하면 12월1일 예산안과 함께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정부는 전임 정부와 달리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겠다고 선언해놓고,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감세 꾸러미’를 내놓은 상황이라 ‘모순적 기조’에 대한 비판이 이번 예산안 심사의 주된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안이 향후 5년간 60조원 규모의 세수 감소를 낳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세수 감소에 대한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세법 개정안 통과를 전제로 제시한 내년 총수입 전망조차 과대 추계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달 펴낸 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예정처는 내년 총수입을 정부 전망(625조9천억원)보다 3조4천억원 적은 622조6천억원으로 전망했다. 내년에 주식시장 침체로 증권거래세가 정부 전망보다 1조1천억원 덜 걷히고, 경기 침체로 인해 부가가치세도 정부 전망보다 5천억원 감소한다는 등의 판단이다. 예정처는 세법 개정안에 따른 세수 감소 규모를 정부보다 크게 전망하면서 2022∼2026년 5년간 총수입 증가율도 연평균 3.1%로 정부 전망(4.1%)보다 낮춰잡았다. 예정처의 5년간 누적 총수입 전망도 정부 전망보다 21조3천억원 적다.
내년도 예산안이 취약계층 지원 사업 예산을 충분히 담았는지도 논쟁거리다. 특히 지난 여름 침수로 반지하 집에서 일가족이 숨지는 사건으로 주거 취약층을 위해 공공 임대주택을 시급히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확인됐는데도, 취약층 주거복지 사업의 대표 격인 공공 임대주택 예산은 5조6천억원(올해 예산 대비)이나 삭감됐다. 반면 월 소득 약 450만원의 미혼 청년도 청약할 수 있는 공공 분양주택 예산은 1조원 이상 늘렸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무주택·1주택자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완화 방안도 고소득자에게만 유리한 방안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어, 고소득자 편향의 주택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사랑상품권에 대한 국고지원 예산의 전액 삭감도 문제를 삼고 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애초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비용을 부담해온 사업인데, 2018년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경기 침체를 겪은 군산 등 고용위기 지역에 한하여 국고지원이 시작됐다.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 확산기에 전국적으로 국고지원을 확대했으나, 내년 예산에서는 사업 성격상 지자체가 부담해야 할 사안이라며 관련 예산 7천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민주당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지역사랑상품권 국고지원 예산을 부활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정부는 지방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법인세 인하 등 세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민주당의 역점 사업인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증액하면서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