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항공기 테러 계획이 적발됐다는 발표가 나온 뒤 10일 미국 교통안전국 직원들이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의 리하이 밸리 국제공항에서 승객들의 기내 휴대용 가방들을 조사하고 있다. 앨런타운/AP 연합
○○○행 결항·○○○행 연착입니다…2차 검색 받으세요
미-영 노선 테러경보…공항 사실상 마비
“젖먹이 우유까지 안전검사” 부모들 ‘진땀’
미-영 노선 테러경보…공항 사실상 마비
“젖먹이 우유까지 안전검사” 부모들 ‘진땀’
제2의 9·11 테러 공포가 미국 전역에 엄습했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10일(현지시각) 미국과 영국 사이 항공노선에 최고 수준의 테러경보인 ‘레드’(적색경보), 다른 노선들에는 다음 단계인 ‘오렌지’ 경보를 발령했다. 적색경보는 국토안보부 창설 이후 처음으로 내려진 것이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여객기에 대한 테러 기도 적발로 내려진 이 조처로 이날 미국 내 415개 공항은 공포와 혼란 속에서 사실상 마비 상태를 보였다. 강화된 보안조처로 공항청사 밖까지 길게 늘어선 대기 행렬, 새로운 보안기준에 따라 다시 짐을 싸는 승객들, 항공기 연발과 연착 등은 이날 미국 내 모든 공항의 모습이었다.
항공사들은 일부 비행을 취소했으며, 대부분의 비행 출발시간을 1시간 이상 지연시켰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선 한두 시간 연발은 보통이었고, 덴버 공항에선 두 시간 넘게 보안검색 행렬에서 대기해야 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덴버에서 런던 히스로공항으로 가는 여객기는 4시간 이상 늦어졌다. 승객들은 1차 검색대를 통과한 뒤 탑승대 앞에서 다시 2차 검색을 받아야 했다. 일부 공항에서는 번개를 동반한 강풍이 불어 혼란이 더 극심했다. 뉴저지주 뉴어크 공항에서 이날 국제선 1편을 포함해 출발과 도착 여객기가 각각 23편씩 취소됐고, 뉴욕 케네디 공항에선 영국으로 가는 국제선 2편이 취소됐다.
특히 적발된 테러범들이 액체 폭발물을 반입하려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 공항 검색대에는 승객들로부터 거둔 음료와 화장품 등 액체 반입품들이 수북이 쌓였다. 공항 직원들이 확성기를 통해 액체와 젤 성분의 휴대를 금지한다고 외치는 가운데, 임시수거함과 쓰레기통은 음료와 술병, 샴푸와 비누, 치약뿐 아니라 로션과 향수 등 고급 화장품들로 넘쳐났다. 덴버 공항에서 피닉스행 제트블루항공을 타려던 줄리 비슬리(31)는 로션과 립스틱, 립글로스 등 비싼 샤넬 화장품을 내버리고, “내 얼굴을 다 버렸다”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 젖먹이를 위한 우유도 안전검사를 거쳐야 해, 젖먹이를 동반한 부모들이 애를 먹었다.
도착 승객들도 마찬가지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런던발 아메리칸항공을 타고 이날 정오께 뉴욕 케네디 공항에 내린 승객들은 여러 차례 검색을 받아야 했다. 승객들은 신문 이외에 책·담배·휴대폰은 물론 핸드백 반입도 허용되지 않았다며, 여권 등이 들어 있는 비닐백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영국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11, 12살의 보딩턴 자매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테러 기도 얘기를 듣고 우리 비행기가 테러 목표인 10대 중 1대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오싹했다”며 “비행 중에 몇몇 어른들이 훌쩍거리기도 했다”며 비행 당시의 공포감을 전했다.
주요 국제공항엔 중무장한 경찰들이 폭탄 탐지견과 함께 순찰을 도는 등 경비활동도 강화됐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300명의 주방위군 병력을 유럽과 직항노선이 있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공항에 투입했다. 매사추세츠, 뉴욕주 등에서도 9·11 테러 이후 처음으로 주방위군 병력이 공항 경비에 투입됐다.
국토안보부 관리들은 “오후가 되면서 검색요원과 승객들이 강화된 보안조처에 적응하면서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며 “앞으로 얼마나 이번 조처가 지속될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며칠 안에 상황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9·11 테러에 이은 이번 사건으로 앞으로 미국 공항에서의 보안조처는 원천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원 정보위원장인 피트 획스트러 의원은 “이번 사건은 수화물을 들고 가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보안검색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임을 내비쳤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 사건 발표된 지 수시간 뒤 “이 국가가 이슬람 파시스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확실히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람계 주민들은 이 발언으로 다시 술렁이고 있다. ‘미-이슬람관계위원회’(CAIR)는 즉각 성명을 내어,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반이슬람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말”이라고 비난하면서 “무슬림도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이며, 따라서 신앙이나 출신국가 때문에 표적이 돼선 안 된다는 점을 미국 동포들이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외신종합 hoonie@hani.co.kr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 사건 발표된 지 수시간 뒤 “이 국가가 이슬람 파시스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확실히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람계 주민들은 이 발언으로 다시 술렁이고 있다. ‘미-이슬람관계위원회’(CAIR)는 즉각 성명을 내어,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반이슬람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말”이라고 비난하면서 “무슬림도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이며, 따라서 신앙이나 출신국가 때문에 표적이 돼선 안 된다는 점을 미국 동포들이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외신종합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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