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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푸틴, 21세기 히틀러 될 수 있어…그냥 두면 따라할 나라 생길 것”

등록 2022-03-22 04:59수정 2022-03-22 22:07

[인터뷰] 마르친 오치에파 폴란드 국방차관
“러시아, 폴란드·발트 국가들도 침략하지 않으리란 보장 있나”
무력 통한 국경 변경 좌시하면 한반도·일본도 긴장 커질 우려
마르친 오치에파 폴란드 국방부 차관이 17일(현지시각) 오후 폴란드 바르샤바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마르친 오치에파 폴란드 국방부 차관이 17일(현지시각) 오후 폴란드 바르샤바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폴란드는 나치 독일과 소련이란 두 제국이 충돌하는 역사적인 경험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21세기의 히틀러가 될 수 있다. 역사는 삶의 스승이다.”

지난달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바라보는 폴란드의 입장은 다른 유럽 국가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과 사뭇 다르다. 이 나라는 우크라이나·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나토의 최전선 국가이다. 그 때문인지 우크라이나를 지키지 못하면 자신들이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강한 실존적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겨레>는 17일(현지시각) 오후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국방차관 집무실에서 마르친 오치에파 폴란드 국방차관을 만나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폴란드인들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라는 거대한 안보 위협과 살을 맞대고 살아온 폴란드인들의 상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군사적 움직임을 미리 포착했나.

“우크라이나 주변에서 이뤄진 러시아의 군사 활동을 몇 주, 심지어 몇 달 전부터 면밀히 관찰했다. 지난해 봄부터 러시아는 과거보다 훨씬 더 큰 ‘자파드’ 군사 훈련(20만 병력을 동원한 러시아-벨라루스의 대규모 합동 군사 훈련)을 했다. 지난해 이 훈련의 규모는 (예전보다 커서) 불안감을 일으켰다. 나토 소속의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들도 러시아의 침략 위협을 감지하고 있었다.”

―일각에선 나토의 끊임없는 동진이 러시아가 군사 개입을 하게 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러시아’가 아닌 ‘푸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독재자를 상대했던 역사적 경험을 떠올려야 한다. 히틀러가 1939년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를 침략하기 전까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히틀러를 상대했다. 독재자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레드 라인’은 어디에 있나? 조지아나 우크라이나가 아니라면 어디에 있는가? 러시아가 폴란드, 발트 국가들을 침략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국경을 바꾸려고 무력을 사용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것인가?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은 우리를 ‘러시아 혐오 국가’로 여긴다. 하지만 러시아가 어떻게 했는지, 역사를 봐라. 2008년에는 조지아였고, 2014년에는 크림반도·돈바스였다.”

―폴란드가 옛 소련제 미그(MIG)-29 전투기 28대를 독일의 미군기지를 경유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용의를 밝혔다. 하지만 미국이 난색을 보이며 유야무야 됐는데, 왜 그렇게까지 나서나.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다. 처음부터 (미국 등은) 이번 전쟁에 대한 나토의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토군이 개입하면, 미국·캐나다·프랑스·독일·폴란드 등이 개입하는 세계 대전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린 러시아를 침략자로 생각하고 우크라이나는 희생자로 여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그들 스스로 방어하도록 도우려 한다. 일단은 인도주의적 원조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돕고, 몇 가지 장비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는 합법적인 행위다.

침략자가 있다면 우린 희생자를 도와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 회원국이나 나토 회원국이 아니지만 자유세계(free world)의 일부다. 한국은 물론 오스트레일리아·일본·대만과 같은 자유세계의 일부라는 거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국가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미그 전투기 지원과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유럽과 자유세계에 도움을 요청했고 (미그기 지원을) 논의한 바 있다. 폴란드는 비록 이런 무기가 ‘공격용 무기’라고 하더라도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국가만의 임무가 될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등 지원을 통해) 도움을 주는 것이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는 데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이는 나토 회원국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의사결정에 (나토 회원국 간) 협의가 필요한 이유다. 이 문제에 대한 폴란드 정부의 단독 행동 역시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 가능성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러시아의 우려와 유럽 일부 나라들의 회의주의 때문이다. 폴란드 입장에서 볼 때 러시아가 우려한다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국제법을 믿는다면, 한 국가의 운명을 그 나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토 가입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우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자기들 영향권의 일부로 묘사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러시아는 내일은 에스토니아가 자기들 영향권에 있다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 일본·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국제 질서를 해치고 있어서다. 국제법이 아닌 무력, 힘에 의한 지배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회원국 가입은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와 나토가 결정할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 가능성에 대해서 나는 우크라이나가 회원국이 될 자격이 있다고 본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 회원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목표들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면 정부 조직과 법을 개혁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들이 그들만의 개혁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네스 얀샤 슬로베니아 총리(왼쪽부터),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 데니스 시미할 우크라이나 총리가 지난 1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만난 뒤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야네스 얀샤 슬로베니아 총리(왼쪽부터),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 데니스 시미할 우크라이나 총리가 지난 1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만난 뒤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폴란드는 나토의 주요 회원국 중 하나다. 나토의 장기 전략이 궁금하다. 나토는 확장해야 하나.

“맞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야심이 있다. 자유세계를 만들려는 그런 야심이다. 유럽뿐 아니라 세계 140개 나라가 러시아를 침략자로 묘사하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한다. 이는 곧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상당히 성공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가 폴란드 국경에서 불과 25㎞ 떨어진 우크라이나 서부 군사 시설에 폭격을 가해 35명이 죽었다. 러시아가 어떤 메시지를 보낸 것일까.

“러시아는 우리를 위협하고, 겁주려 한다. 하지만 실패할 거다. 만약 그들이 우리 국경, 곧 나토 국경 근처로 접근한다면, 나아가 우리 도시나 영토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대응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경우, 폴란드까지 침공해올 것으로 보나.

“만약 우리가 러시아의 침략을 두고 본다면 수많은 전쟁, 수많은 희생자, 비극을 겪고도 여전히 한 나라가 자기들의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 전쟁을 악용할 수 있다. 당면한 문제는 우리가 국경을 바꾸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행위를 인정할 것인지다. 러시아가 국경선을 바꾸려고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그 다음에는 다른 국가들이 러시아를 따라 할 수도 있다. 러시아가 일본·에스토니아·폴란드를 침략할 수도 있다. 결국, 세계 질서에 관한 문제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폴란드에 어떤 의미인가. 위기의식을 느끼나.

“폴란드에게 (러시아라는 위협은) 새롭거나 놀라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러시아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고 여겼다. 우리의 동맹과 우호국들은 러시아를 이웃 국가들을 공격하려 하는 권위주의 국가로 여긴다.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를 공격했을 때 폴란드 대통령은 전쟁 중에 중부 동유럽 지도자들이 트빌리시(조지아의 수도)를 방문하도록 해 ‘오늘은 조지아겠지만, 내일은 우크라이나, 그다음은 발틱 국가들, 그리고 다음은 아마도 폴란드가 (러시아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겐 큰 충격이겠지만, 우리에겐 새로울 것 없는 일이다.”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러시아가 핵을 사용한다는) 그 시나리오를 믿지 않는다. 우리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핵 위협의 그늘에서 살고 있다. 러시아든 미국이든 모두가 패배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아무도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승자 없는 전쟁을 만드는 무기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이는 곧 나토도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폴란드 국방 당국은 자국 안에 미국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 있나.

“워싱턴에 대한 질문이다. 폴란드 정부, 발트 삼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루마니아는 미국이 우리 영토에 (군사 병력 또는 무기를) 좀 더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추가 배치할 의향이 있냐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진영 간 군비 경쟁이 심화하는 것 같다. 유럽의 군사적 긴장감이 더 높아지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첫째,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영웅적인 전투가 러시아군의 한계를 보여줬다. 둘째, 우리는 러시아가 아주 많은 군인·장비·탱크·전투기·헬기를 잃는 것을 보고 있다. 전쟁이 러시아를 더 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 전쟁이 서구를 더 단결하게 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스웨덴이나 오스트리아처럼 ‘중립국화’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러시아가 왜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결정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결정할 문제다. 스웨덴이나 오스트리아도 지금 현실을 보면서, 나토 가입을 다시 고려하고 있다. 중립이라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가 비행금지구역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폴란드 국방 당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왜냐하면 비행금지구역은 실제로 누군가가 러시아의 전투기나 로켓을 격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어려운 결정이다. 이 문제를 두고 동맹국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최종 결정은 나토 차원에서 내려야 한다.”

―폴란드는 중립국감독위원회로서 한반도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다. 북한은 현재 상황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큰 나라들이 무력으로 국경선을 바꾸려 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또 다른 전쟁을 마주해야 한다. 다른 독재자들도 더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아마 한반도와 일본 인근 지역에서도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우리의 단합과 결의를 보여줘야 한다.”

바르샤바/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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