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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어쩌다 Z가 ‘러시아 응원’의 상징으로 둔갑했나

등록 2022-03-08 16:07수정 2022-03-08 16:17

우크라 침공 러시아 탱크 등에 새겨져
국영TV, 건물벽, SNS 등에도 퍼져
호스피스병동 어린이들의 Z 대열 모습까지
러 국방부 “‘승리를 위해’(Za pobedu) 의미”
조롱으로 되치기 당하고, 협박 기호 되기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건물 벽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지의 상징이 된 Z 글씨가 커다랗게 표시돼 있다. AFP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건물 벽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지의 상징이 된 Z 글씨가 커다랗게 표시돼 있다. AFP

알파벳 Z(제트)가 갑자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상징으로 둔갑했다. 왜 그렇게 됐고, 어떤 반응이 일고 있는지를 영국 <가디언>과 미국 <뉴욕 타임스>가 8일 조명했다.

가장 최근의 Z 논란은 러시아 체조 선수 이반 쿨리악이 지난 5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평행봉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뒤 가슴에 테이프로 Z자를 만들어 붙이고 시상대에 올라서면서다. 국제체조연맹은 쿨리악이 우크라이나 전쟁 지지 상징물을 착용한 의혹이 있다며 윤리위원회에 회부했다.

이에 앞서 Z가 눈길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19일께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집결한 러시아 군의 탱크와 트럭 등의 옆면에 Z 글자가 칠해진 것이 목격되면서다. 이어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뒤에는 러시아 군 장비에서 Z 뿐 아니라 O, X, A, V 등의 글자도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Z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놓고 추측이 난무했다. 러시아가 제거 대상으로 삼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Zelensky)를 뜻한다거나, 러시아 군이 주로 집결해있던 서쪽(Zapad)를 의미한다는 등의 풀이가 나왔다. 무성한 추측을 바라보고만 있던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7일 인스타그램에 Z는 “승리를 위하여”(Za pobedu)에 등장하는 전치사 “Za”에서 따온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카잔의 한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한 말기암 어린이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상징이 된 Z 모양 대열을 만든 모습. 트위터 화면 갈무리.
러시아 카잔의 한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한 말기암 어린이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상징이 된 Z 모양 대열을 만든 모습. 트위터 화면 갈무리.

그 사이 Z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응원의 상징으로 러시아 안에서 퍼져나갔다. 전쟁 시작 며칠 뒤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 <아르티>(RT)는 Z를 새겨넣은 티셔츠와 후디 등 상품을 판매한다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알렸다. 이후 Z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출연하는 플래시몹이 잇따랐고, 길거리 벽이나 광고판에도 Z가 등장했다. 학교들은 어린이들이 Z 모양 대열로 서 있는 모습을 소셜미디어 등에 올렸다.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한 어린이 말기암 환자들이 Z 대열을 만든 모습도 트위터에 돌고 있다. 상업용 차량들이 Z 스티커를 붙이고, 텔레비전 토크쇼에도 Z 티셔츠를 입은 출연자가 등장한다. 마리아 부티나 러시아 연방 의원이 자신의 재킷에 Z를 그려넣는 모습과 함께 “형제여, 당신의 일을 하라. 우리는 언제나 당신을 지지할 것이다”라고 촉구하는 등 정치권의 Z 홍보는 말할 것도 없다.

러시아 출신 미국인인 미디어 평론가 바실리 가토프는 <뉴욕 타임스>에 “이건 분명히 국가가 유도하는 밈(모방을 통한 유행)”이라며 “항상 이런 종류의 메시지에 수용적인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밈을 소셜미디어에 뿌리고 돈을 받는 ‘선전 부대’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가 전쟁 지지 여론을 확산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관제 캠페인’이라는 것이다. 비평가들은 Z를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에 빗대기도 한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무력으로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합병할 때도, 나치에 대한 러시아의 승리를 상징하는 검정·주황색 줄무니 리본(세인트 조지 리본) 사용을 적극 장려한 전례가 있다.

러시아 정부가 열심히 Z를 퍼뜨리고 있긴 해도, 러시아 대중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오히려 Z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 7일 러시아 안에서 펼쳐진 전쟁 반대 시위서 일부 참가자들은 “Zachem”(무엇을 위해서?)이라고 쓴 푯말을 들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Z는 협박 기호로도 쓰이고 있다. 러시아의 반체제 성향 여성 펑크록 그룹 ‘푸시 라이엇’과 인권단체 ‘메모리얼’은 자신들의 아파트 문에 Z 글자가 칠해졌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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