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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러-우크라 전쟁, 소도시 바흐무트에 달렸다

등록 2022-12-22 18:05수정 2023-06-25 16:42

러군, 수세 속 공세 펴는 유일한 곳
희생 잇따라 ‘고기 분쇄기’ 악명 붙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이 20일 러시아군과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만나고 있다. 바흐무트/UPI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이 20일 러시아군과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만나고 있다. 바흐무트/UPI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작은 도시 바흐무트를 둘러싼 공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을 가를 ‘중요 변곡점’으로 떠올랐다. 이 싸움을 2차 세계대전의 ‘주전선’이었던 독소전의 승부를 가른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빗대는 분석도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방문 직전인 20일 바흐무트 전선을 찾아 “갈가리 찢어졌으나 정복되지 않은 우리의 ‘요새 바흐무트’와 그 수호자들을 지원해달라”며 “동부 전선은 바흐무트가 싸우고 있어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전투가 갖는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려는 듯 이 전선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의 서명이 담긴 우크라이나 국기를 받아, 21일 미 의회 연설 뒤 이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전달했다.

바흐무트 전선은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반격에 밀려 지난 11월에 남부 거점도시 헤르손에서 드니프로강 동안으로 철수한 러시아가 전열을 정비한 뒤 재개한 공세의 초점이다. 러시아는 지난 5월 이 도시에 처음 포격을 퍼부은 뒤 8월부터 점령을 위한 전투를 전개하고 있다. 현재 수세에 몰렸다는 평가를 받는 러시아가 공세를 펼치는 유일한 지역이기도 하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도시는 우크라이나 중부로 나아가는 도로와 철로의 교차점이어서, 이곳을 장악하면 러시아와 동부 전선을 잇는 안정적인 보급선을 확보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 도시를 확보하기 위해 희생을 마다 않고 병력을 쏟아붓는 중이다. 그에 따라 이 도시가 갖는 심리적·상징적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병력을 끝없이 투입해 적의 병력과 자원을 묶고 소진시키는 옛소련의 전술을 구사 중이다. 2차 세계대전의 물줄기를 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축소판이 바흐무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에서 이 전투를 주도하는 이들은 용병 회사인 바그너(와그너)그룹 용병들이다. 이들은 바흐무트에서 우크라이나 진지를 차례로 공격하는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제24기계화여단 장교인 사샤는 영국 <업저버>에 “그들은 우리 쪽으로 일군의 소규모 병력을 차례로 보낸다”며 “그 공격이 실패하면, 그들은 똑같은 방법으로 또 시도한다”고 전했다.

그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근접전을 피해 왔지만, 이 지역에선 본격적인 근접전과 참호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러시아가 파상 공세를 이어가며 하루에 60~100명에 이르는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이 지역에 ‘고기 분쇄기’(meat grinder)라는 악명이 붙은 이유다. 바흐무트 전투를 지휘하는 바그너 창립자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우리 임무는 바흐무트 자체가 아니라 우크라이나군의 파괴와 그 전투 역량의 소진”이라며 “이는 다른 지역에도 극히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이 전투가 ‘바흐무트 고기 분쇄기’라고 불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지금까지 이 도시에 3만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러시아의 파상 공세를 막으면서 우크라이나군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항전 의지를 북돋우고, 서방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의도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방문 직전 이 도시를 찾았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미국 안보 싱크탱크인 ‘해군분석센터’(CNA)의 러시아군 전문가인 마이클 코프먼은 <로이터>에 “러시아는 이미 투입한 자원 때문에 바흐무트 전투에 집착하고, 우크라이나도 공세의 동력을 유지하겠다는 기대로 (바흐무트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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