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총리 관저 누리집 갈무리
일본 정부 당국자들이 한국의 영토인 독도 문제를, 한·일이 관계 개선을 하려면 꼭 해결해야 하는 ‘외교 현안’으로 삼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섣부른 ‘항복 외교’로 일본에 약점을 노출하면서 그 여파가 한국이 도무지 양보할 수 없는 독도에까지 파급되는 모습이다.
일본 내각부의 한 간부는 29일 <산케이신문> 온라인판 기사에, “징용공 문제(강제동원피해 배상 문제) 다음으로 다케시마(독도)도 착수해야 한다. 일-한 관계 개선에 전향적인 윤 정부 (임기) 내에 (이 문제 해결을) 강하게 호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하라 세이지 관방 부장관도 앞선 16일 한-일 정상회담 직후 진행한 비공개 브리핑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한-일 현안에 대해서 잘 대처해 나가자는 취지를 밝혔다. 이 사안들 중에는 다케시마(독도) 문제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당국자들이 한·일 양국이 풀어야 할 의제에 △일본군 ‘위안부’ 합의 △초계기 위협 비행(레이더 조사)뿐 아니라 독도까지 넣겠다는 인식을 거듭 밝히고 있는 셈이다.
일본 정부가 이 같은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3각 협력 강화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일본에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일본과 관계를 풀겠다고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제 손으로 허물고 민감한 역사 문제에 눈감는 모습을 보면서,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양보가 가능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산케이신문>은 한-일이 “진정한 신뢰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선 (한국도) 다케시마 문제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나아가 “일본과 관계 개선을 서두르는 윤 대통령과도 (독도 문제를) 협의하지 못한다면, (이 문제) 해결에 총리가 진심을 갖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독도를 반드시 외교 의제로 삼을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독도는 한국이 실효 지배를 하고 있지만, 일본은 “우리의 고유 영토다.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은 2005년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통과시켜 해마다 행사를 하고,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정부 인사를 파견한다. 일본의 안보정책을 설명하는 <방위백서>에는 2005년, 외교정책 등이 담긴 <외교청서>에는 2012년부터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이 명시됐다. 일본 초중고의 모든 교과서에도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토 주장이 그대로 실려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한국의 실효 지배를 ‘변경’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는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뒤,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카드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일 정도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항복 외교’ 이후 상황은 급변할 전망이다. 한국이 거부한다 해도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에서 기시다 총리가 일방적으로 독도 문제를 꺼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 등을 통해 해결하려면, 한국 정부의 동의가 필요해 일본 혼자 현재 상황을 뒤엎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동안 감히 언급할 수도 없었던 독도 문제가 정상회담 테이블 위로 오르게 됐으니, 일본 외교의 ‘놀라운 승리’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