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히토 일왕
믿었던 일왕 발언 공개되자 극우세력 ‘경악’
히로히토 ‘외국인 조차 내마음 알아주는데…’ 탄식
히로히토 ‘외국인 조차 내마음 알아주는데…’ 탄식
히로히토 일왕(연호 쇼와, 1901~1989)이 A급전범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는 메모의 발견에 이어, 그가 전쟁과 야스쿠니 참배를 정당화하는 우파 각료들을 지탄했다는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히로히토가 숨지기 전 해인 1988년 4월22일 ‘모두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192명이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당시 이 모임의 핵심이었던 오쿠노 세이스케 국토청 장관이 “전후 43년이나 지났는데 (참배 형식이) 공적이냐 사적이냐를 운운하는 것은 망령에 사로잡힌 것”이라는 망언을 해,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불붙었다. 오쿠노의 망언에 한국과 중국이 거세게 반발함으로써 오쿠노는 결국 5월13일 사임했다.
히로히토는 이런 얘기를 듣고는 탄식을 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21일 전했다. 당시 측근들은 히로히토가 “왕궁에서 사회정세에 대한 설명을 듣던 도중 오쿠노 발언의 경위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일본에서 천황의 입장과 전쟁에 대한 내 마음을 아직도 잘 이해해주지 않는다’며 한탄했다”며 “눈가가 빨갛게 물들고 눈물도 흘렸다”고 말했다. 히로히토가 우파 각료의 발언에 대해 이런 심경을 피력한 것은 A급전범 합사에 대한 발언을 한 직후다. 관계자들은 히로히토가 일부 정치인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고 느끼고, 현직 각료들의 야스쿠니 참배를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다른 측근은 “정치인으로부터 전쟁을 정당화하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면 폐하는 몹시 불쾌해 하는 모습이었고, 영·미 외교관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외국인 조차 내 마음을 알아주는데’라며 탄식을 했다”고 말했다. “폐하가 (A급전범) 합사를 듣자 그 자리에서 ‘앞으로는 참배하지 않겠다’는 의향을 보였다” “폐하가 화를 냈기 때문에 참배가 없어졌다. 합사를 결정한 사람은 정말 바보다”라는 등의 측근들 증언이 봇물을 이뤘다. 히로히토 메모와 증언 “태평양전쟁은 잘못된 침략전쟁” 인식 뚜렷 히로히토의 이런 뜻을 거스르고 해군소좌 출신인 마쓰다이라 나가요시 전 야스쿠니 궁사가 78년 A급전범 합사를 단행한 데 대해선, 황국사관(만세일계의 천황이 일본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관)에 깊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태평양전쟁은 성전’이라는 사고에 사로잡힌 그는 합사에 신중한 히로히토가 잘못됐다며, 합사를 강행해 ‘왕의 잘못’에 대해 간언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마쓰다이라는 당시 왕세자(아키히토 현 일왕)의 야스쿠니 참배도 강력히 주장했다. 이번 메모와 증언들은 태평양전쟁이 잘못된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을 히로히토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메모에는 그가 전쟁에 대해 “가장 싫은 기억”이라고 언급한 부분도 나온다. 히로히토의 이런 인식은 지금도 천황제를 떠받들며 전쟁과 야스쿠니 참배를 정당화하려 안간힘을 쏟는 극우세력에겐 상당한 타격이다. 히로히토는 천황제가 절대적 권위를 떨치던 시절 신으로 추앙받던 일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메모 등은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에 ‘면죄부’를 주려는 세력에게 악용될 소지도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히로히토가 전쟁을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나타날수록, 전쟁은 A급전범 등 일부 국군주의자들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우려가 있다.
이번 메모 등에서 히로히토가 A급전범 가운데 독일·이탈리아와 3국동맹을 추진한 인물들을 강하게 비난한 대목 등이 특히 그렇다. 그는 A급전범으로 기소돼 옥·병사한 뒤 합사된 마쓰오카 요스케 전 외상, 시라토리 도시오 전 이탈리아 대사의 합사에 가장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패전 직후 측근이 듣고 기록한 <쇼와천황독백록>에는 마쓰오카 전 외상에 대해 “(41년) 2월 말에 독일에 가 4월에 돌아왔는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대단히 독일 편을 들게 됐다. 아마 히틀러에게 매수라도 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라고까지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 책에는 “육군대신과 충돌했다. (일·독) 동맹론을 철회하라고 했더니 대신은 그러면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일-미 교섭은) 처음에는 대단히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마쓰오카가 반대해 엉망이 됐다”는 등의 기술도 있다.
이런 기술을 종합하면, 히로히토는 미·영 연합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태평양전쟁만 잘못된 결정이었으며, 3국동맹을 주장해 미·영과의 대결로 몰아간 인물들이 제일 문제였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빌미로 삼아 극우성향의 <산케이신문>은 21일 사설에서 “메모만으로는 쇼와 천황이 A급전범 14명 모두의 야스쿠니 합사에 대해 불쾌감을 표명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며 억지주장을 편 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참배를 촉구했다.
반면, 다른 신문들은 일제히 히로히토의 뜻을 헤아려 일본 스스로 야스쿠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누구든지 함께 전쟁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을 애도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중국과 한국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일본인 자신이 답해야 할 문제다. 그것을 이번 쇼와 천황의 발언이 보여주고 있다”(아사히 사설)
“국립추도시설의 건립 또는 전몰자묘원의 확충 등 방법도 고려되고 있다. 야스쿠니 문제의 해결에는 이런 선택 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미우리 사설)
“새로운 사실이 명확해진 만큼 야스쿠니 문제를 냉정히 논의해 다른 나라의 의사에 휘둘리지 말고 일본이 스스로 해결하는 좋은 기회로 삼도록 하자. 쇼와 천황의 ‘마음’의 역사적 배경을 무겁게 받아들여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한 관계자가 적절히 행동할 것을 간절히 바라고 싶다”(니혼게이자이 사설)
“지금 상태에서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역시 적절하지 않다”(마이니치 사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또다른 측근은 “정치인으로부터 전쟁을 정당화하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면 폐하는 몹시 불쾌해 하는 모습이었고, 영·미 외교관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외국인 조차 내 마음을 알아주는데’라며 탄식을 했다”고 말했다. “폐하가 (A급전범) 합사를 듣자 그 자리에서 ‘앞으로는 참배하지 않겠다’는 의향을 보였다” “폐하가 화를 냈기 때문에 참배가 없어졌다. 합사를 결정한 사람은 정말 바보다”라는 등의 측근들 증언이 봇물을 이뤘다. 히로히토 메모와 증언 “태평양전쟁은 잘못된 침략전쟁” 인식 뚜렷 히로히토의 이런 뜻을 거스르고 해군소좌 출신인 마쓰다이라 나가요시 전 야스쿠니 궁사가 78년 A급전범 합사를 단행한 데 대해선, 황국사관(만세일계의 천황이 일본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관)에 깊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태평양전쟁은 성전’이라는 사고에 사로잡힌 그는 합사에 신중한 히로히토가 잘못됐다며, 합사를 강행해 ‘왕의 잘못’에 대해 간언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마쓰다이라는 당시 왕세자(아키히토 현 일왕)의 야스쿠니 참배도 강력히 주장했다. 이번 메모와 증언들은 태평양전쟁이 잘못된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을 히로히토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메모에는 그가 전쟁에 대해 “가장 싫은 기억”이라고 언급한 부분도 나온다. 히로히토의 이런 인식은 지금도 천황제를 떠받들며 전쟁과 야스쿠니 참배를 정당화하려 안간힘을 쏟는 극우세력에겐 상당한 타격이다. 히로히토는 천황제가 절대적 권위를 떨치던 시절 신으로 추앙받던 일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메모 등은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에 ‘면죄부’를 주려는 세력에게 악용될 소지도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히로히토가 전쟁을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나타날수록, 전쟁은 A급전범 등 일부 국군주의자들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우려가 있다.
야스쿠니 신사 합사에 대한 히로히토 일왕의 발언을 적은 도미다 아사히코 궁내청 장관의 수첩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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