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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청와대 이전, ‘영빈관’ 꼬리가 몸통 흔들었나 / 손원제

등록 2022-09-18 17:09수정 2022-09-19 02:40

[논썰] 풍수가 의식을 지배했나? 윤 당선자 졸속 · 불통에 ‘역풍’ 갈무리
[논썰] 풍수가 의식을 지배했나? 윤 당선자 졸속 · 불통에 ‘역풍’ 갈무리

손원제 | 논설위원

“누나, 저기 내 아는 도사 중에, 총장님이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고. 근데 그 사람이 청와대 들어가자마자 영빈관을 옮겨야 된다고 하더라고.”

“응. 옮길 거야.”(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김건희 여사 간 2021년 12월11일 통화 녹취)

‘용산 영빈관’ 신축 논란을 보며, 이 통화 내용을 떠올리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게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온갖 설화와 물의를 빚고도 재깍 태도를 바꾼 적이 거의 없다. 유야무야 묻고 가거나 계속 버티다가 파장이 커지고서야 뒤늦게 한 수 접는 식이었다. ‘전두환 미화’, ‘개 사과’, ‘김 여사 허위 경력’ 논란 등에서 반복돼온 태도다. 이번엔 이례적으로 하루 만에 “즉시 예산안을 거둬들이라”며 ‘철회’를 지시했다. ‘예산 낭비’ 비판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잠복해 있던 김 여사와 무속·풍수 논란이 다시 급속히 번지는 데 대한 부담감도 한몫했을 것 같다.

영빈관 신축 계획이 처음 드러난 건 15일 밤이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재정부의 ‘국유재산관리기금 2022년도 예산안’에 신축 예산 878억원이 편성된 사실을 용케 발견했다. 언론 보도로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지만, 대통령실은 다음날 오후까지도 “용산 시대에 걸맞은 영빈관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국민이 공감할 것”이라며 오히려 염장을 질렀다. 저녁 8시30분에야 갑자기 “국격에 걸맞은 행사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이 같은 취지를 충분히 설명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며 철회하라는 윤 대통령 지시가 나왔다.

철회 결정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추진 경과에 대한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기재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국회에 낼 때까지 대통령실은 어떤 사전 논의도 공개적으로 진행한 적이 없다. 여당도 모르게 비밀 작전 하듯이 예산을 짰다. 실제 계획이 언제 세워지고 예산안에 반영됐는지는 미스터리다.

윤 대통령의 일방통행과 불통이야 이골이 날 정도다. 용산 국방부로 집무실을 옮기는 과정부터 졸속과 오기로 얼룩졌다. 안보 우려, 막대한 이전 비용, 대통령 출퇴근에 따른 국민 불편 가중 등의 문제가 제기됐지만, 윤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독단을 “결단”으로 추켜세웠다. 당시에도 그렇게 서둘러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보니, 무속과 풍수의 영향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어려운 선택을 결정한 뒤 그것을 명확히 설명하는 것인데 납세자에게 막대한 비용을 전가하는 집무실 이전에서 그러지 못했다”며 ‘기본이 안 됐다’고 비판하는 칼럼을 실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더더구나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상식은 이번에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영빈관 신축은 윤 대통령 자신의 발언마저 뒤집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20일 ‘외빈을 맞이하는 공간은 어떻게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청와대 영빈관이나 본관을, 저녁에 국빈 만찬 같은 행사를 할 때 쓸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용산공원에 워싱턴 블레어하우스 같은 것을 건립하는 방안이 있다”고도 했지만, 이는 용산 미군기지 반환과 오염 치유 등이 전제돼야 한다. 내년 예산안에 넣을 단계가 아니다. 그는 15일엔 전임 정부의 태양광 사업 의혹과 관련해 “어려운 분들을 위한 복지에 쓰여야 될 국민 혈세가 이권 카르텔에 사용됐다는 게 개탄스럽다”는 말도 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 ‘김건희 특검법’ 등과 관련한 기자 질문엔 어김없이 “민생을 살피느라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답했다. 그래 놓고 민생 위기 속에 878억원짜리 영빈관을 짓겠다고 예산을 몰래 편성했다. 또 하나의 ‘양두구육’이다.

비합리적인 선택이 잇따르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갑작스러운 청와대 이전, 더 뜬금없는 ‘용산 영빈관’ 비밀 추진에도 특정한 의도와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은 “단 하루도 청와대에 머물 수 없다”며 기이한 고집을 부렸다. 무속적 이유로 “(영빈관을) 옮기겠다”고 한 김 여사의 단언에 비춰 보면, 결국 ‘영빈관’ 때문에 그 고집을 부린 것 아니었느냐는 물음이 번지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현대 민주국가의 지도자라면 답해야 한다.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미혹에서 건져 올리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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