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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어떤 독백

등록 2019-08-12 18:22수정 2019-08-13 19:43

어차피 이번 ‘전쟁’도 우리가 이기긴 어려워. ‘한번 각오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나라, 그게 일본’이고 일본정신이야.

‘힘이 부족하면 굴욕 감수할 수 있는 용기라도 있어야지.’ 무조건 문통이 꿇어야 돼.

요즘 촛불 시위만 하면 우리한테 몰려와서 난리던데, 그 정도 흔든다고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아? 친일언론? 토착왜구? 웃기지 말라 그래.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아베규탄 4차 촛불문화제'참석자들이 지난 10일 저녁 광화문네거리에서 조선일보로 행진을 하고 있다. <한겨레> 사진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아베규탄 4차 촛불문화제'참석자들이 지난 10일 저녁 광화문네거리에서 조선일보로 행진을 하고 있다. <한겨레> 사진

일찍이 우리 선대 사주께서 여러 글을 남기셨는데 보통 이런 식이지.

‘신동아 질서의 건설로써 우리 일본은 완전히 동양의 맹주가 되었으니 이는 오로지 강직한 일본정신의 발로일 것이다. … 위로 성명하옵신 천황폐하를 모시옵고 아래로 국민이 일치단결 국운의 번영을 꾀한 때문이다.’

‘2500만 조선민중이 대망하여 마지 아니하던 징병제가 드디어 실시되어 … 중책의 일부가 우리에게 허용되고 … 영예 있는 지위가 주어진 데 대하여 거듭 감사 감격하는 바이다. … 전투에 있어서는 ‘죽은 후에야 그친다’는 투지 투혼을 길러야 할 것이다.’

지금은 이해 못하겠지만 70여년 전을 생각해봐. 힘없는 민족한테 다른 길이 있었겠어? 새해 첫날마다 ‘천황’ 부부 사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어 충성맹세하고, 월간지 권두언으로 직접 징병·징용 독려한 것도 다 ‘언론’으로 살아남기 위해서였어. 우리 사주께서 현명한 선택을 한 거지.

요즘 일본에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세력들이 만만찮다며? ‘일본회의’라고, 소속 의원 모임에 총리·부총리가 특별최고고문이고…. ‘황실을 받드는 균질한 일본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평화헌법 개정하고 자위대 해외 파병’하는 걸 목표로 한다던데. 아베가 개헌에 목매고, 역사교과서 고치고, 과거사 사죄 뒤집은 것도 다 그런 세력들이 배후라며? 이런 정부에 대고 ‘위안부’ 사죄, 강제징용 배상 요구했으니 이후 상황은 안 봐도 비디오지.

어쨌거나 아베가 ‘선빵’을 날리는 바람에 ‘전쟁’이 벌어졌잖아. 우리가 ‘어떡하나’ 고민했을 거 같지? 그런 거 없어. 우린 한 놈만 패거든. 왜냐고? 총선 대선 줄줄이 남았는데, 당연히 ‘문재인 책임’이지… 다 알면서 왜 그래?

그러니 아베가 도발했지만 두말할 거 없이 ‘문재인 정부가 부른 참사’지. ‘정부 무능으로 자초해놓고 국민에게 희생 요구하냐’ 이거야. ‘일본은 기술보국 한다는데 강제로 연구소 컴퓨터 끄는 나라는 앞으로도 당할 수밖에’ 없어. 당근이지. ‘사법부가 외교를 지배하도록 놔두는 정신 나간 정부’는 또 어디 있고…. ‘미·일 합작품’인데도 모르고 있으니 ‘대통령은 누가 써준 대로 읽는 대역배우’인 모양이야~.

이렇게 융단폭격 했더니 우리한테 ‘친일’ 운운해서 요즘은 아베도 좀 때리고 있어. 우리 주특기 알잖아. 알리바이용 ‘양비론’. 가끔씩 ‘편가르기 말라’ 프레임으로 맞받아치는 것도 필수.

그건 그렇고, 아베가 오죽하면 선빵을 날렸겠어? 얼마 전에 미 연방법원도 그랬잖아 ‘후손들이 잘 사는 걸로 선대의 빚은 다 갚은 거’라고. ‘미·일 덕분에 유례없는 번영’을 누려놓고 이제 와서 또 배상하라는 게 말이 돼? ‘이런 일 반복해서 겪으면 일본 아니라 어떤 나라도 상대를 불신’하는 게 당연해.

어차피 이번 ‘전쟁’도 우리가 이기긴 어려워. 사주께서도 일찍이 강조하셨지만 ‘한번 각오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나라, 그게 일본’이고 일본정신이야. ‘군사 외교 금융은 우리가 절대 열세’고 ‘일본 청년들은 한 분야 파고들며 전문가 길 걷는데 무슨 수로 기술 봉쇄를 돌파해’. ‘힘이 부족하면 굴욕 감수할 수 있는 용기라도 있어야지.’ 무조건 문통이 꿇어야 돼. 왜냐고? 이러다 총선까지 ‘전쟁’ 끌면 야당 작살나.

그리고 다른 데 얘기하진 마. 전략물자 북한 유출 논란 터졌을 땐 아찔했어. 사실 지난 5월에 처음 ‘전략물자가 북한 등으로 흘러갔을 가능성’ 있다고 한 게 우리잖아. 국내 업체가 생산한 거라 애초 일본 주장이 말이 안 되지. 근데 어쩌다 보니 ‘전략물자 관리도 해명도 엉터리 산업부’라고 일본 대신 우리 정부를 조진 거야.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총리까지 조져대면서 위기를 넘기긴 했는데… 또 ‘토착왜구’ 소리 나올까 봐 식겁했지.

그나저나 요즘 촛불 시위만 하면 우리한테 몰려와서 폐간하라고 난리던데 시위가 얼마나 가겠어? 김대중·노무현 때도 끄떡없던 우리야. 100년 전통인데 그 정도 흔든다고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아? 사주한테 반민족행위자라지만 우린 한번도 인정한 적 없어. 당연히 국민 앞에 사죄한 적도 없지. 그런데도 지금까지 ‘항일민족지’로 포장해서 잘나가고 있잖아. 그러고 보니 우리도 그냥 넘어가 놓고 아베한테 사죄하란 것도 좀 그러네. ㅎㅎ. 친일언론? 토착왜구? 웃기지 말라 그래.

(<조광> 1940년 7월호, 1943년 8월호의 권두언, <조선일보> 2019년7~8월에 실린 사설·칼럼에서 인용하고 길윤형 <아베는 누구인가>를 참고했습니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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