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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조국의 길, 윤석열의 길

등록 2019-09-23 18:51수정 2019-09-26 09:53

김이택

‘기생충 수법’은 ‘논두렁 시계’ 못잖은 모욕주기다. 윤석열 총장은 헌법 정신에 비춰 수사에서 비례와 균형을 찾자고 했다. ‘권력형 비리’에 초점을 맞춰야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조국 장관을 지키자는 지지층이나 대통령의 뜻은 ‘검찰개혁’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젊은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개인의 영달을 버렸듯이 조국의 ‘앙가주망’도 그 연장선에 있다.

‘미국 소송 변호사 수임료 누가 냈는지 한번 알아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 수임료 수뢰 사건은 오로지 특수통으로 로펌 변호사까지 해본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감’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소송비용이 엄청난데 자기 돈 냈을 리 없다는 판단은 적중했다. 삼성에서 119억원 뇌물 수수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조국 의혹’ 수사 역시 대검에 축적된 기존 ‘정보’에 론스타 등 펀드 수사 경험이 많은 윤 검찰총장의 ‘감’이 더해져 시작됐다는 관측이 많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지명 뒤 윤 총장이 임명권자에게 ‘위험성’을 직접 알리려 했다는 얘기도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7월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7월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장관 후보자 자녀의 논문·장학금 등 도덕성 논란 와중에 검찰이 뛰어든 것도 ‘사모펀드’에서 불법 소지를 봤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조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가 단순 투자자 이상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차명으로 주식을 관리하는 코링크의 실소유주라는 혐의를 두고 주변 인물들을 추궁하고 있다고 한다. 정 교수를 옹호하는 이들이나 일부 여당 의원들은 정 교수가 조 장관 오촌조카에게 단순히 돈을 빌려준 거라면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한다. 설사 투자자인 정 교수가 펀드 운용에 깊이 개입했다 해도 법률상 운용자로서의 형사책임까지 묻기는 어렵다는 전문가 견해도 있다.

조 장관 일가의 혐의 내용과 별개로 지금까지 수사 과정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무엇보다 국회 청문회 일정이 합의된 직후 압수수색에 들어감으로써 대통령의 임명권에 대한 도전으로 비치게 한 건 ‘윤석열 검찰’의 패착이다. 임명권자에게 ‘조국 법무장관 부적격’이라고 간언한 검찰총장으로선 이제 그걸 입증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몰렸다. 수사의 객관성·중립성을 의심받을 꼬투리를 스스로 만든 건 안타깝다.

특수부 검사를 20여명이나 투입했으나 ‘권력형 비리’라고 할 만한 이른바 ‘스모킹 건’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소소한 피의사실까지 속속 흘러나온다. 대학 표창장 위조 방법까지 시시콜콜 국민에게 알려야 할까. ‘기생충 수법’ 흘리기는 특히 유감스럽다. 일부 기사는 ‘검찰 내부’발이다. ‘논두렁 시계’ 못잖은 모욕주기다. 일각에선 그런 방식의 위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어 사실관계조차 맞는지 의문이다.

검사에게 공익의 대표자로서 ‘객관 의무’를 지우는 것은 표적수사, 먼지털기 수사가 아니라 실체적 진실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라는 취지다. 윤 총장이 취임사에서 수사의 개시·종결도 헌법 정신에 비춰 고민하고, 비례와 균형을 찾자고 한 것도 이런 뜻일 것이다. 이번 수사도 ‘권력형 비리’나 ‘권력자 비리’에 초점을 맞춰야 정당성을 갖는다.

검찰이 23일 조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부인 정 교수도 곧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새달 4일이 오촌조카 조씨의 기소 시한임을 고려하면 이번주 정 교수 신병 처리 결과에 따라 조 장관 거취가 다시 논란이 될 것이다.

오래전 법무장관 하마평이 나오던 초기부터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여러 정황에 비춰보면 그를 장관으로 기용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개혁은 문 대통령이 정치에 참여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동기가 됐다. 조 장관 역시 학자 시절부터 시민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오랫동안 검찰개혁에 몸바쳐왔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 임명 때부터 ‘검찰개혁’ 실현을 위한 자신의 대리인으로 그를 꼽았던 것 같다. 그가 장관직을 고사하지 못한 데는 그런 사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여론은 그가 장관직을 고수하는 데 비판적이다. 청와대는 “일희일비 않는다”지만 총선을 치러야 하는 여당 내 기류는 조금 결이 다르다. 정당 지지도가 다시 곤두박질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를 둘러싼 논란 사안들은 사실 과거의 ‘사퇴’ 기준을 이미 넘어섰다. 그를 지키자는 지지층이나 문 대통령의 뜻은 ‘검찰개혁’ 명분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가 거취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개혁 추진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될 것이다.

이른바 ‘86세대’를 놓고 여러 비판이 있으나 그래도 그 주축은 젊은 시절 ‘민주주의’라는 큰 가치를 위해 개인의 영달과 출세를 모두 버린 이들이다. 조 장관이 말하는 ‘앙가주망’도 그 연장선에 있을 것으로 믿는다.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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