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1월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별관에서 열린 ‘2020 대검찰청 신년다짐회’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에는 한동훈 반부패 강력부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손원제 | 논설위원
윤석열 검찰총장 거취 논란이 또 한번 정치권을 달궜다. 여권 일각에선 윤 총장 물러나라는, 보수 야권에선 윤 총장 흔들기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눈길을 끄는 건 사퇴 주장은 산발적인 데 비해, 반격은 집중적이며 공세적이라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설훈 의원 정도가 “나라면 물러나겠다”며 사퇴를 압박했다. 몇몇 의원이 윤 총장 저격에 나섰지만, 직접적으로 사퇴를 요구한 건 아니다. 박범계 의원은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 쏟을 필요 없다”고 선을 그었고, 이해찬 대표는 ‘윤석열 함구령’을 내렸다.
반면, 보수 야권에선 ‘윤석열 구하기’ 포화를 퍼부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윤 총장 거취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시길 바란다”고 대통령을 걸고 나섰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윤 총장 탄압 금지를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을 공동 제출하자”고 했다. 보수 매체들은 이런 주장을 키우며 ‘찍어내기’ 프레임을 부각한다.
이런 구도는 정치권이 진영으로 갈려 거의 모든 사안을 정쟁화해온 관성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권력기관 감시라는 국회의 주요 책무를 다하긴 어렵다. 거취 공방에 묻혀 정작 윤 총장의 직무 수행이 적절했느냐 하는 본질적인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적 편가르기를 벗어나, 수사·감찰 현안을 다뤄온 윤 총장의 행태를 냉철하게 짚어봐야 한다.
시민사회에서 제기하는 ‘윤석열 검찰’의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다. ‘과잉 무리수’ 논란이 하나다. ‘조국 수사’는 역대급 수사 역량을 쏟아붓고도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라 할 중대 혐의는 아직까지 내놓지 못해 ‘먼지털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는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 또한 청와대의 조직적 개입을 예단하고 일부 무리한 근거까지 짜깁기해 넣은 공소장 작성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과도한 검찰 수사가 청와대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검찰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반발과 관련 있지 않겠느냐는 건 합리적 의심이다. 다만 이런 ‘과잉 수사’ 논란이 윤 총장 체제 검찰의 정당성에 대해 결정적으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요인은 아니라고 본다. 검찰도 이에 대해선 방어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전 국정농단 사건과 똑같이 ‘살아 있는 권력’에도 가차없이 칼을 뽑았을 뿐이라고 항변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론으로도 떨쳐내지 못할 문제점이 있다. ‘편파 수사’ 논란에 드리운 이중 잣대 문제다. 이야말로 윤석열식 ‘법과 원칙’이 포장해온 검찰의 두 얼굴을 햇볕 아래 폭로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도 ‘원칙의 칼날’을 들이대는 검찰이 왜 특정 사안에는 그만큼의 결기를 보이지 않는 걸까? 이런 의문을 낳는다. 한쪽엔 가혹하고 한쪽엔 너그러운 원칙이란 ‘선택적 정의’ 아닌가.
사례는 넘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시절 세월호 수사 방해 의혹, 나경원 전 의원 자녀 입시·취업 의혹, 패스트트랙 저지 사건. 자유한국당 관련 ‘3종 세트’를 대하는 검찰 칼끝은 무뎠다. 윤 총장 장모 관련 사건 처리도 다를 게 없었다.
윤 총장이 최측근 참모였던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과 <채널에이> 유착 의혹을 다루는 자세는 당혹감을 안긴다. 처음엔 독립적 감찰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한 차장을 피의자로 소환하려 하자, ‘범죄가 되느냐’며 대검이 막았다. 윤 총장은 한 차장이 피의자로 전환되자 ‘나는 관여 않겠다’며 대검 부장회의에 사건 지휘를 일임했다. 그래 놓고 정작 ‘수사팀 견제용’ 전문수사자문단은 직권 소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놓고 3단 방어막을 쳤다. 윤 총장이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 때 보여줬던 기개대로라면, 일선 수사팀에 힘을 실어줘야 마땅했을 일이다.
바게트 껍질처럼 바스러지는 윤석열표 원칙의 허망함은 ‘윤적윤’(지금 윤석열의 적은 과거의 윤석열)을 불러낸다. ‘검찰주의자’ 총장의 한계 또한 고스란히 드러났다. 검찰 밖엔 서릿발 같지만 ‘내 식구’만은 예외라는 독단. 윤석열의 빛바랜 원칙이 가려온 이 낡은 시스템을 깨는 것이 검찰개혁이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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