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나온 영국 왕립협회 보고서 〈사회 속의 과학〉. ‘과학과 사회’가 아니라 ‘사회 속의 과학’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2020을 보는 열 가지 시선 ② 과학과 사회의 소통은 어떻게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세계사의 시야에서 봤을 때 나는 지난 10년 동안 과학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바로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한 각성이 크게 높아진 점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과학은 계몽을 통해 시민들의 무지와 비합리성을 교정함으로써 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비유컨대 사회와 과학의 관계는 세상 모르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그를 깨워 멋진 세계를 보여줄 ‘왕자’의 관계와 같은 것이었다. 과학자와 시민의 쌍방향 대화 지난 2000년 영국 상원에서 펴낸 <과학과 사회>라는 보고서는 과학 연구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음을 인정하고 과학자와 시민의 쌍방향 대화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의 참여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영국 왕립협회는 2001년부터 6년 동안 ‘사회 속의 과학’이라는 이름의 과학과 사회의 쌍방향 소통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이런 인식 변화는 영국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발전된 국가들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된다. 그것은, 과학기술이 한편으로 사회에 다양한 편익을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수많은 사회·윤리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 상황과도 직접 연관돼 있다. 유전자조작, 생명복제, 정보기술, 원자력발전과 핵폐기물, 나노기술 등을 둘러싸고 전세계에서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논쟁 과정에서 제기되는 비판적 견해에 대한 과학기술자들의 태도이다. 대부분 과학기술자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비관론이나 비판론을 단지 무지의 소산이라고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과학기술은 과학적 훈련과정을 거친 전문가들만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주의와 전문가주의 이데올로기가 낳은 결과이다. 지식 전문성, 생활 전문성 2000년대 들어 많은 나라들이 과학과 사회의 쌍방향 소통과 참여를 중시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과학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저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영국의 경우,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과학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높아지자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더 개방적이고 소통적으로 바꿈으로써 과학에 대한 시민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려고 한 것이다. 과학기술이 지닌 불확실성으로 인해 과학기술자의 전문성도 매우 제한적일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시민들이 생활에서 체득한 전문성도 과학기술과 관련한 문제를 푸는 데 상당히 기여할 수 있음을 과학기술학(STS)이 밝혀낸 것도 과학자와 시민의 쌍방향 소통과 시민의 참여를 증대시킨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땠는가? 겉모습으론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들어 과학기술의 사회적 차원이 눈에 띄게 강조돼왔다. 내가 1990년대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하는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할 때만 해도 과학기술정책이란 산업정책과 경제정책의 하위 분야쯤으로 여겨져 과학기술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과학기술을 단순히 경제성장의 도구로 여기던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을 통해 삶의 질이나 공공복지를 높이고 사회통합을 이루겠다는 청사진이 발표되고 “국민과 함께하는” 길을 걷겠다는 방법론도 제시되곤 했다. 과학기술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인문사회학자와 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여하는 일들도 종종 있었다. 소통, 형식 아닌 내용을 채워야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과학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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