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학교 강사인 서아무개씨가 지난 4일 서울 노원구에서 택배 배송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경기도에서 12년간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강사(방과후 강사)로 컴퓨터를 가르쳐온 정아무개(53)씨는 최근 주변에 “올해를 끝으로 방과후 강사 생활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학생은 물론, 지역 학교 교사들의 연수까지 맡아 교육감상도 받았던 그였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방과후 강사를 대하는 학교와 정부의 태도에 큰 실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씨와 동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주 수입원인 방과후학교가 중단돼 소득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이들이 ‘개인사업자’(프리랜서) 신분이라며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정씨는 “학원보다 적은 돈을 받아도 공교육 아이티(IT) 전문강사라는 자부심 하나로 수업에 최선을 다했는데, 그동안의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컸다”고 하소연했다.
사실 정씨가 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섭섭함을 느낀 건 이번만이 아니다. 학생들에겐 정규수업에 들어가는 교사들과 똑같이 ‘선생님’으로 불렸지만, 매달 오락가락하는 급여통장을 볼 때마다 속이 쓰렸던 게 사실이다. 방학 땐 시설 공사를 이유로 대부분 방과후학교가 열리지 않아 소득이 ‘0원’이 됐다. 학생들이 소풍이나 수련회를 가는 날은 수업을 못 하는데도, 수업을 안 했다고 수강료를 뺐다.
지난달 9일 온라인 개학은 정씨의 속을 더 상하게 만들었다. 방과후 강사가 개인사업자라며 생계 대책은 수수방관했던 학교가, 교사들의 원격수업 제작을 도와야 한다며 강사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씨는 “하루 3시간씩, 시간당 1만원을 준다며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필요할 때만 우리를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정부가 야속하다”고 했다.
정씨는 프리랜서와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생계 대책에서도 ‘애매하게’ 밀려났다. 지난달 프리랜서 등에게 월 50만원씩 최대 2개월을 준다는 생활안정지원금 소식을 듣곤, 시청에 달려갔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수업이 끊겨 소득이 없는 방학을 대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발목을 잡았다. 일주일에 한번 제조업 회사에 출근해 작업에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업무였는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12년 만에 처음으로 4대 보험 가입자가 됐다. 그땐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상상도 못 했지만, 정씨 같은 4대 보험 가입자는 프리랜서 지원금 신청 대상에서 제외된다.
아르바이트 급여는 100만원을 조금 넘는데,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사장이 “3월에 일한 건 4월치랑 같이 주겠다”고 미뤄 아직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4대 보험료는 계속 나가서 생활안정지원금도 받을 수가 없다. 그는 “담당 공무원한테 무급휴직자 쪽으로라도 지원받을 수 없겠냐고 물었더니, 이번엔 ‘방과후 강사는 프리랜서라서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도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진작에 체념하고 ‘각자도생’에 나선 이도 있다. 30대 중반의 이아무개씨는 중학교 정규수업 시간대 ‘스포츠클럽’을 담당하는 시간제 강사다. 등교 개학이 연기된 요즘 그는 일주일에 14시간 원격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체육 이론을 가르치면서, 대리운전 기사로도 일하고 있다. 스포츠클럽 수업과 별개로 주당 28시간씩 진행했던 방과후학교 수업이 중단돼 소득이 70∼80% 급감했기 때문이다. 방학 중인 지난 2월, 주당 20시간씩 했던 ‘돌봄교실 특기적성 수업’이 마지막 오프라인 수업이었다.
2014년부터 6년간 ‘학교 선생님’으로 살아온 이씨는 지금도 자신의 직장을 “‘학교’라고 말하기가 뭣하다”고 했다. 이씨가 가르치는 스포츠클럽은 2012년 2학기부터 중학교 교육과정에 편성됐다. 그해 정부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중학교 체육수업 시수를 주당 4시간으로 확대하면서다. 처음엔 체육교사가 맡았지만, 시수 확대로 교사가 부족해지자 교육당국은 이씨와 같은 시간제 강사에게 수업을 맡겼다. 하지만 시간제 강사들은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선 주당 14시간 이상의 수업을 할 수가 없다. “15시간 이상 일하면 4대 보험을 들고 주휴수당도 줘야 해 그 이상은 일을 못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씨는 코로나19로 ‘선생님’과 ‘대리운전 기사’를 오가기 전에도 수도권 10여개 학교를 돌아다니는 ‘메뚜기 생활’을 이어왔다. 애초에 사회안전망에서 비켜나 있었던 이씨에게 코로나19의 파고는 더 높은 셈이다.
그는 ‘사상 첫 4월 개학’이 유력해진 3월10일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거리에 따라 건당 수수료는 다르지만 “요즘 ‘스킬’이 좋아졌다”는 그는 시간당 평균 1만8천원에서 2만2천원의 돈을 번다. 등교 개학을 하더라도 코로나19 기간 동안 밀린 대출금을 갚기 위해 당분간 대리운전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김경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은 “이혼을 했거나 1인 가구라서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강사들의 경우 3월까지 신용카드 사용 등으로 버텨온 상황이라 생활자금 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길 바라고 있다”며 “개인의 잘못이 아닌 정부 방침으로 수업을 못 해 소득을 잃은 만큼 교육당국이 방과후학교 강사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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