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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자유는 한없이 확대되어도 좋은가

등록 2007-04-15 17:05수정 2007-04-15 17:19

박용성 교사의 인문 사회 비타민 /

교과서 훑어보기

자유의 기본 전제는 자율적 이성을 갖춘 자유로운 개인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행동의 옳고 그름을 올바르게 판단하여 옳은 행동은 더욱 촉진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은 슬기롭게 억제할 줄 아는 자기 통제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그는 다른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무슨 일이든지 잘 해 낼 것이며, 따라서 그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자유를 위하여 남의 자유를 함부로 침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내가 자유인인 것과 똑같이 다른 사람도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이 자유의 한계이다. ―<윤리와 사상>(교육 인적 자원부) 168~169쪽

다른 사람보다 효율적으로 경쟁하는 사람 또한 시장에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의 효율성이란 한마디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기 위한 행동 양식을 말한다. 즉, 시장에서 생산자는 끊임없는 신기술 개발과 생산 비용의 절감을 통해 경쟁자보다 품질 좋고 저렴한 가격의 상품들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경쟁자보다 더욱 높은 제품 경쟁력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경제>(두산) 63쪽


논제 찾아 생각하기

자유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들 생각하지. 자고 싶을 때 자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먹고 싶을 때 먹는 것, 다시 말해 외부의 강제나 구속이 없는 상태를 자유라고 생각해. 맞아. 그러나 사람은 혼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살아가야 해. 따라서 ‘완전한 자유’, 곧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어. 만약 내가 이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나는 이웃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방해하게 돼.

만일 제멋대로의 이런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적 규범이 없다면,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자유가 거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될 거야. 왜냐 하면, 우리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로운’ 행동에 의해서 제약되기 때문이지. 나아가, 우리는 누군가의 일시적 기분이나 욕망에 의해 해를 입거나 희생될지도 몰라.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타인의 모든 공격을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영리하거나 강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완전한 자유’란, 누구에게도 실제로는 거의 자유롭지 않은 상태를 의미할 뿐이야. 따라서 자유가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을 적절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어.

하지만 자유야말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본질적 특징이야. 따라서 우리는 구속이나 강제로부터 벗어나야 해.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규범이나 법률과 같은 강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존재이기도 해. 그렇다고 사회적 강제 규범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 자유로운 존재이기를 포기하게 되고. 답답하지? 역사상 이 문제에 매달렸던 대표적 인물이 루소와 칸트야.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자율(autonomy)이라는 개념에서 찾아냈어.

루소는, 이해(利害) 관계를 달리하는 개인들의 집합인 사회에서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은 오직 모든 개인의 자발적인 동의를 통해서, 곧 개인 의지와 사회 의지의 일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상호 계약을 통해서 각자의 개인 의지를 포기하고 스스로 사회의 통합된 의지에 복종한다면, 개인은 자기 자신에게 복종하는 셈이야. 왜냐 하면, 법 안에서 구체화된 일반 의지(general will)는 사회 구성원들의 개인 의지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지. 이러한 계약을 통해 개인으로서 인간은 자기의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지만,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인간은 이제 그것을 ‘법적·도덕적 자유’의 형태로 되찾게 돼. 동시에 이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어떤 도덕적 의무를 지운다는 것을 의미해. 이제 그는 합의를 통해 형성된 일반 의지―이것이 바로 사회의 강제 규범인 법이야―의 구속을 받게 돼. 이렇게 하여 ‘스스로 의무 지우는 것’을 통해 자기 만족을 추구하던 자연적 존재인 인간은 도덕법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지.

루소가 자유의 사회적 측면에 주목하여 스스로 법을 세우고 스스로 그것에 복종하는 시민사회 자유인의 윤리, 곧 자율로서의 자유 개념을 처음으로 착안했다면, 칸트는 그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윤리의 보편적 기초로 삼고자 했어. 그는 먼저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가 지니고 있는 행위의 원리를 검토해 보라고 요구했어. 남들도 모두 나와 같은 행위의 원리에 따라 행동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를 스스로 물어 보라는 거야. 이것은 각자의 행위 원리가 보편화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지. 만약 이러한 자기 검증의 결과, 긍정적인 답변이 나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도덕의 원리로 삼을 수 있어. 이로부터 칸트는 자신이 최고 원리로 삼은 정언 명령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어. “너 자신의 행위 원리가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원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박용성교사 여수여고 교사
박용성교사 여수여고 교사
참된 자유는 분명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야. 왜냐하면, 그것은 남의 자유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거기에는 어떤 제한이 불가피해. 그런데 외적인 힘에 의한 제한인 ‘타율’은 일종의 구속을 의미하므로 자칫하면 자유 본래의 뜻을 훼손할 위험이 있어. 그래서 우리는 ‘자율’로서의 자유 개념에 주목하게 된 거야. 자유는 자기가 스스로 원칙을 세우고 스스로 그것을 지키는 것, 곧 자율에 있어. 이 때 그 원칙은 다른 모든 사람들도 각자의 원칙으로 삼을 만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어야 하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가져.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여수여고 교사


■ 기출 문제로 논제 잡기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2006학년도 서울대학교 정시 논술 문제)

 사례는 현실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경쟁의 양상을 비유적으로 보여 준다. 이 세 가지 경쟁의 성격을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에 대해서 논술하시오. (제시문 <1>~<7>을 참고할 것) 

 <사례 A>

 고슴도치와 토끼가 맛있는 음식을 걸고 달리기 시합을 하였다. 고슴도치는 꾀를 써서 몰래 자신과 닮은 아내를 경주의 결승점에 먼저 보냈다. 토끼가 도착하자 고슴도치 아내가 “나는 벌써 와 있다”고 말하였다. 결국 고슴도치가 음식을 차지하였다. 

 <사례 B>

 초등학교 축구 팀과 아마추어 성인 축구 팀이 축구 경기를 하게 되었다. 심판은 새로운 규칙을 정하여, 초등학생 팀은 11명, 성인 팀은 6명으로 하며, 성인 팀 선수는 상대에게 태클을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심판은 규칙의 준수 여부를 엄격히 감시하였다. 

 <사례 C> 

 새끼고양이 가운데 한 마리가 유난히 작고 허약해서 어미젖을 먹을 때도 다른 형제들에게 밀려 생존이 어렵게 보였다. 주인이 그 고양이에게 먹이를 먼저 주는 등 특별히 돌보고 사랑하여 그 고양이도 다른 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잘 성장할 수 있었다. 

 

 <제시문 1> 

 어떤 마을에 누구나 가축을 방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는 공동의 땅이 있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각자 자신의 땅을 갖고 있지만, 이 공동의 땅에 자신의 가축을 가능한 한 많이 풀어 놓으려 한다. 자신의 특별한 비용 부담 없이 넓은 목초지에서 신선한 풀을 마음껏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농가에서는 공유지의 신선한 풀이 자신과 다른 농가의 모든 가축들을 기르기에 충분한가 걱정하기보다는 공유지에 방목하는 자신의 가축 수를 늘리는 일에만 골몰하였다. 주민들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하여 공유지는 가축들로 붐비게 되었고, 그 결과 이 마을의 공유지는 가축들이 먹을 만한 풀이 하나도 없는 황량한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개릿 하딘, 「공유의 비극」) 

 <제시문 2>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연민(憐憫)과 동정(同情)의 원리가 존재한다. 이 원리들로 인해 우리는 인간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자기에게는 별 이익이 없어도 타인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타인의 비참함을 목격할 때 우리는 이러한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 도덕적이거나 인간미가 풍부한 사람은 물론이고, 무도한 폭한(暴漢)이나 사회의 법률을 극렬하게 위반하는 사람도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애덤 스미스, 『도덕 감정론』) 

 <제시문 3>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전통적 형태의 경쟁이 아니라 신상품·신기술·신공급원·신조직 형태 등과 관련한 경쟁이다. 이 경쟁은 비용 또는 품질에서 결정적 우위를 차지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기업의 이윤이나 생산량의 다과(多寡)를 좌우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토대 및 그 생존 자체까지도 좌우한다. 이런 종류의 경쟁은 다른 경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어떤 사업자가 자기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외부에서는 경쟁 압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늘 경쟁 상태에 있다고 느낀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결국 완전 경쟁 상태와 마찬가지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경쟁이 독점보다 언제나 바람직하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적인 혁신자가 차지하는 독점 이윤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요제프 A. 슘페터,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제시문 4>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회적 또는 분배적 정의라고 간주되는 것은 인위적인 질서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지 자생적인 질서 속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다. 자유의 제한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잃게 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시장 질서에 대한 간섭의 직접적인 효과는 대부분 가시적이며 피부로 느낄 수 있으나, 간접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는 대부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무시되기 쉽다. 따라서 자유와 간섭 사이의 선택이 그 때그 때의 편의에 맡겨진다면, 이는 분명히 자유의 점진적인 파괴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자유를 제한하여 야기되는 손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법, 입법, 그리고 자유』) 

 <제시문 5> 

 사상 체계의 제1 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正義)는 사회 제도의 제1 덕목이다. 이론이 아무리 정치(精緻)하고 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듯이,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혁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사회 전체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정의에 따르면 타인들이 가지게 될 더 큰 선(善)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다수가 누릴 더 큰 이득을 위해서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동등한 시민적 자유란 이미 보장된 것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정의에 의해 보장된 권리들은 어떠한 정치적 거래나 사회적 이득의 계산에도 좌우되지 않는다. 그보다 나은 이론이 없을 경우에 결함 있는 이론이나마 따르게 되듯이, 부정의(不正義)는 그보다 큰 부정의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참을 수 있다. 인간 생활의 제1 덕목으로서 진리와 정의는 지극히 준엄한 것이다. (존 롤스, 『사회 정의론』) 

 <제시문 6> 

 경제가 시장 기능에만 의존하면 시장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는 경쟁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경쟁 질서에 반하여 행동할 때 경쟁 질서를 준수할 때보다 더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쟁 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자 하는 충동을 가지게 된다. 안정을 얻고자 하는 욕구와 권력에의 의지(意志)가 각 개인들에게 경쟁의 자유로운 흐름을 조작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한번 형성된 경제 권력은 시장 자체의 힘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붕괴되기 어렵다. 그런데 강력한 경제 권력은 경쟁 관계를 마비시키고, 권력 구조의 고착화로 인하여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하며, 경제의 흐름을 왜곡하여 우수한 시장 참여자에게 손해를 끼친다. 그러므로 국가는 경쟁이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경쟁을 보호할 임무가 있다. 국가는 경쟁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관철시켜야 하며, 기업은 이러한 틀 안에서 경쟁을 통하여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오토 슐레히트, 『사회적 시장 경제』) 

 <제시문 7> 

 ‘경쟁’이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함께 추구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경쟁의 논리가 기술의 진보와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욕구 수준을 계속 높여감으로써 새로운 진보와 창조를 가능케 한 것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경쟁 심리는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적인 동인(動因)이었다. 정치적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이익 집단 또는 정당 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경쟁은 어원적 의미와는 달리 변질되어 통용된다. 경쟁은 더 이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경쟁은 그 자체가 하나의 범세계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다.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승리자와 패배자가 확연히 구분된다. 물론 아무렇게나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의 법칙’이 공정했을 때 패자도 승부의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지만 경쟁 사회에서는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거나 타협점을 찾을 여지가 없다. 경쟁에서 상대방을 이기면 된다는 간단한 논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경쟁이란 곧 상대의 이익을 빼앗는 과정이다. (리스본 그룹, 『경쟁의 한계』) 

 

  <유의 사항>

 1.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는 표현을 쓰지 말 것
 2. 어문 규정과 원고지 사용법에 따를 것
 3. 2,500자 내외(띄어쓰기 포함, ±300자)로 쓸 것
 4. 시험 시간은 180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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