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코로나 블루’ 최전선에는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다.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 복지서비스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정신건강의 위기를 호소하는 이들의 절규를 매일 온몸으로 받아낸다. 누군가의 심적 안정을 위해 역으로 그들은 과도한 업무량, 불안정한 일자리, 폭언까지도 감내한다.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이들의 정신건강은 누가 어떻게 돌봐야 할까. 이런 질문을 품고 <한겨레>는 지난 6월에 2주 동안 이들의 ‘분투’에 함께했다. -편집자
서울시자살예방센터 ‘마음이음 상담팀’ 컴퓨터 모니터 주변 곳곳에 상담 전화를 거는 이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쓰인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제공
저녁 8시30분, 직원들이 퇴근한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안에 정적과 어둠이 찾아왔다. 그러나 유일하게 불이 켜진 한쪽 사무실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이분의 자살사고가 5점에서 3점으로 나빠졌습니다. 밤 10시 이후 한번 더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팀원의 말에 팀장의 질문이 뒤따랐다. “이 케이스가 갑자기 크라이시스(crisis·위기)가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순간 정적이 흘렀다. “팔로업(follow up) 하겠습니다.” “팔로업의 의미는 뭔가요?” 이번에는 팀원의 대답이 곧바로 나왔다. “대상자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살고 싶지 않은,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가 자신을 붙잡아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흔들리는 마음은 통신망을 타고 이곳저곳으로 흐른다. 그 흐름이 이어지는지 끊기는지에 따라 누군가는 안전해지고 또 누군가는 위험해진다. 병원이나 정신건강센터가 문을 닫은 시간, 지인이나 가족에게 전화를 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1577-0199. 이 숫자는 밤이 깊어질수록 더 자주 호출된다. ‘코로나 블루’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이 전화기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므로 살리고 싶은 사람들의 ‘간절함’은 잠들 수 없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콜센터 ‘마음이음 상담팀’도 그런 곳이다. 지난달 13~15일 상황을 재구성했다.
밤 9시, 주간근무조의 인계가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전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네, 마음이음 상담입니다”라는 공통된 말로 시작된 상담사들의 목소리는 헤드셋 너머 들려오는 사연에 따라 변주됐다. “지금 좀 괜찮아지셨어요?” “자살 사고 0~10점까지 있는데 몇점 정도 되실까요?” “병원들 정보를 알려드리지만 지인분 입원 관련 문제는 직접 연락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동시에 들리는 말들을 꼼꼼하게 받아 적었다. 이들의 모니터 곳곳에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고통받는 대상자들에게 전할 희망의 메시지다.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 각종 약에 대한 설명, 경제적 어려움 호소 시 연결 가능한 기관 목록도 있다.
이들은 밤새 센터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상담 내용을 기록한다. ‘신규’ 전화는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누가 어떤 말을 꺼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같이 전화하는 ‘단골’들도 있다. 상담사 ㄱ씨는 “매일 전화해 자살하겠다는 말을 습관으로 치부할 순 없다. 언제 어떤 계기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지, 또 그게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상자의 이야기는 무엇이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가끔 폭언이나 성희롱을 들으면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요….”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대상자에게 다시 전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동시에 자살 시도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대한 출동을 대비한다. 김성우 팀장은 “야간에는 하루 평균 80~90건 전화가 온다. 많으면 100건을 넘어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야간에는 관련 기관들이 대부분 문을 닫기 때문에 전화 중 약 80%가 대상자가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해 상담하는 전화다. ‘서울시’ 센터지만 전국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보호자·지인·경찰 등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이곳에 근무하려면 사회복지사·임상심리사·간호사 중 하나의 자격이 있어야 한다. 현재 센터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이 있는 15명이 근무하고 있다. 상담사들은 4개 조로 나눠 주간(09:00~21:00), 야간(20:30~09:30)으로 나눠 근무한다. 한번 근무 시 3~4명이 함께 일하게 되는데, 한명이 휴가를 가면 2명이서 근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때 직접 출동이 필요한 전화가 오게 되면 센터는 전화를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된다. 김 팀장은 “마음이음 상담팀의 응대율이 낮다는 지적이 있는데, 모든 전화를 다 받고 싶어도 인력이 부족해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서울시자살예방센터 ‘마음이음상담팀’.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제공
밤 9시50분 상담사 ㄴ씨가 모니터에 뜬 문장을 이리저리 고쳤다. 상담 대상자에게 보낼 문자메시지다. ㄴ씨는 대상자마다 처한 상황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문자를 보낸다고 했다. “마음이음 상담팀입니다. 학업 문제로 많이 힘드셨지요. 지금은 어떠신지요? 02-1577-0199는 24시간 상담 가능한 기관이므로 힘든 마음을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약속한 밤 10시, 문자가 전송됐다.
밤 11시30분 상담사 ㄷ씨가 모니터 앞으로 얼굴을 바짝 갖다 댔다. “02 번호다!” 순간 나머지 상담사들의 고개가 ㄷ씨 쪽으로 돌아갔다. 서울 지역번호가 뜨면 경찰일 가능성이 크다. 자살시도자 집 앞에 있는 경찰이었다. 김 팀장은 “네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출동에 나선다”고 말했다. △상담사가 2인1조가 되지 않는 경우 △자해 등으로 대상자의 치료가 시급한 경우 △만취 등으로 대상자의 의식이 없는 경우 △(경찰 등이) 물리적인 보호나 협상의 역할을 요청하는 경우 등에 해당할 때는 상담사들이 출동할 수 없게 돼 있다.
0시15분 김 팀장과 ㄱ씨는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가는 내내 경찰이 전해준 대상자의 신상정보 상태를 적은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린 김 팀장은 ㄹ씨의 집까지 걸어가며 주위를 거듭 살폈다. “상담 이후에 부정적인 소문이 도는 걸 막기 위해서 자택으로 출동을 갈 때는 최대한 주민들 눈에 띄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김 팀장과 ㄱ씨는 열린 문 사이로 조심스레 ㄹ씨의 현관에 발을 디뎠다. 등이 온통 땀으로 젖은 이들이 다시 문밖으로 나오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 김 팀장은 경찰에게 “자살 위험이 높은 편이지만 당장 실행할 단계는 아니다. 아침 7시쯤 ㄹ씨에게 다시 연락을 할 텐데, (만약) 안전을 확인하지 못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설명했다.
새벽 2시20분, 이들은 센터로 돌아오자마자 ㄹ씨에 대한 기록을 작성했다. 겨우 현관 근처에 서서 대화를 나눴지만 이들은 ㄹ씨가 눈치채지 못하게 집 안 곳곳을 살폈다. 집이 어지러운지, 불은 켜져 있는지부터 위치가 높은 데 커튼이 열려 있어 ㄹ씨를 자극하지 않는지, 밥을 해 먹은 흔적이 있는지, 집에 칼이나 가위 등 위험한 도구가 함부로 놓여 있지는 않은지…. “대상자는 우리에게 두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ㄱ씨가 말했다.
코로나19에 확산세에 따라 상담 건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새벽 3시, 당직실로 휴식을 취하러 갔던 ㄴ씨가 머리를 움켜쥐고 걸어 나왔다. 야간근무자들은 새벽 2~4시, 4~6시 사이 번갈아가며 쉴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그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ㄴ씨는 두통약을 찾았다. 출동을 나간 사이 한 대상자가 술에 취해 ㄴ씨에게 폭언을 한 것이다. ㄴ씨는 두통으로 눕지 못하겠다며 의자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 새벽 4시, ㄴ씨 자리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한숨도 못 잔 ㄴ씨는 튕기듯이 일어나 자세를 고쳐 잡았다. “선생님 잘 주무셨어요?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침 7시, 긴장한 표정의 김 팀장은 ㄹ씨의 전화번호를 조심스레 눌렀다. 신호음을 듣고 있던 김 팀장이 조금 밝아진 얼굴로 전화기를 내려놨다. “거절을 누르시네.”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는 신호도 이곳에선 반갑다. 어쨌든 살아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전화를 한번 더 걸었다. 휴대전화를 꺼놨다고 했다. 김 팀장은 조금 안도한 표정으로 “확실히 하는 게 좋다”고 말하며, 경찰에 ㄹ씨의 안전 확인을 요청했다. 아침 7시40분, 경찰에서 ㄹ씨가 안전하다는 연락이 왔다.
아침 8시30분,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주간근무자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다음 근무조 인수인계를 위해 ㄴ씨는 이날 상담 내용을 모두 뽑아 곳곳에 밑줄을 치며 꼼꼼하게 살폈다. 30분 뒤, 주간근무조가 모두 출근했다. ‘마음이음 상담팀’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