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도 휴가 없고 안 맞으면 따돌림…‘백신 갑질’, 너무합니다

직장갑질119, 코로나19 백신 관련 갑질 사례 발표
공공기관·대기업 아닌 일터서 ‘백신휴가제’ 무용지물
연차조차 쓰지 못해 2차 접종 예약 미룬 직장인도
부작용 탓 접종 않은 직장인에 “감염시 손배, 해고”

지난 10월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문화체육센터에 마련된 코로나19 백신 예방 접종센터에서 한 시민이 백신을 맞고 있다. 김혜윤 기자 [e-mail]

직장인 ㄱ씨는 백신을 맞은 후 후유증을 심하게 겪었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고, 근육통으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출근하고서도 열이 계속 올라 조퇴를 하겠다고 하니 상사가 “미열인데 조퇴하는 게 말이 되냐”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상사는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본인은 백신을 맞아도 아무 후유증이 없다고 말했다.

ㄱ씨처럼 백신 휴가를 받지 못하고, 연차조차 쓰지도 못한 채 아픔을 참고 일하는 직장인들이 있다. 14일 직장갑질119는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한 직장 갑질을 겪은 이들의 제보가 지난 7월부터 11월 현재까지 80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제보자들 대부분은 중소기업 직장인이다.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뒤 최대 이틀의 휴가를 부여하라고 했지만, 권고에 그쳐 공공기관·대기업이 아닌 일터에서 ‘백신 휴가제’는 유명무실하다.

직장인들은 백신 휴가를 요청해도 연차 휴가를 쓰라는 지시를 받거나, 연차 휴가를 쓰더라도 괴롭힘을 당했다. 백신 휴가를 요청해도 거부당한 ㄴ씨는 접종 다음 날 연차 휴가를 내려 했으나, 상사가 접종 다음 날까지 보고서를 만들라고 지시해 아픈 몸으로 출근했다. ㄷ씨는 백신을 맞고 연차 휴가로 쉬고 있는데 상사로부터 온 전화를 받지 못해 혼났다. ㄷ씨는 휴가가 끝나고 복귀한 뒤 상사가 처리할 수 없는 일을 맡기고 노골적으로 따돌렸다고 주장했다.

당연한 권리인 연차도 쓰지 못했다는 직장인도 있었다. ㄹ씨는 “우리 회사는 연차도 사정을 해서 겨우 허락을 받고 써야 한다“며 “2차 백신 접종일에도 회사에서 연차를 허락하지 않아서 예약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직장갑질119는 “정부가 백신을 접종한 직장인들에게 2∼3일의 유급휴가를 의무화하고 비용을 지원했다면 백신 갑질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신을 맞지 않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징계를 받을 위험에 처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ㅁ씨는 “백신 부작용을 심하게 겪는 편이라 아직 코로나19 백신을 못 맞고 있다”며 “상사가 백신 안 맞았다고 비난하고, 밥도 같이 먹지 못하게 하고 투명인간처럼 취급한다”고 말했다. ㅂ씨는 “기저질환이 있어 백신을 나중에 맞으려고 하는데 회사는 무조건 맞으라고 한다”며 “(회사는)백신을 맞지 않아서 코로나 감염이 발생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고, 백신 접종을 거부하면 징계나 해고·전보발령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기홍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백신을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계해고를 하면 부당해고로 판단될 소지가 크다”며 “백신 미접종을 이유로 직원을 따돌리는 행위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e-mail]

▶바로가기: 전문가들이 ‘백신 휴가’ 필요하다 입 모으는 이유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987531.html

“백신 맞고 원청 정규직은 이틀 아프고, 협력업체 노동자는 하루만 아픈가요?”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4531.html

코로나 백신 휴가마저 서러운 비정규직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4872.html